한일부부 일본이주의 고민 - 내 "일"을 포기하는건 너무 힘들었어요.<일과바꾼 배우자비자>

I am Korean, and live in Japan

한일부부 일본이주의 고민 - 내 "일"을 포기하는건 너무 힘들었어요.<일과바꾼 배우자비자>

2020.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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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uko ✍🏻金沢在住・ソウル出身のデザイナー・スイーツ系の工芸作家を兼ねており金沢の情報を韓国に発信。

한일부부 일본이주의 고민 - 내 "일"을 포기하는건 너무 힘들었어요.<일과바꾼 배우자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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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포스팅에서는 집에만 있으면 몸이 간질거리는

한국에서의 개인사업을 접고

전업주부 생활을 하고있는지 9개월째 되는 이주 새내기,

하지만 잠시라도 쉬질 못하는 성격,

바로 저의 마음속의 이야기들을 꺼내볼까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그날의 계절

싸늘함이 정수리를 내리꽃는 추위였던 한겨울.

 

거래처 업체의 점장님과 함께, 앞으로 다가올 봄과 여름시즌을 겨냥해 L 백화점측과 미팅을 다 잡아두고사 이벤트 준비다, 수업준비다, 전시준비다 뭐다뭐다 여러가지 계획을 구체적으로 결정짓고 진행하고 있던 와중, 청천병력같은 소리가 들렸던게 바로 그때 그 계절 무렵이었지요.

바로 , 우리 한일커플의 그 언젠가 닥쳐올 숙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본 이주 문제. 남편이회사계약을 좀더 연장하고 한국에 2년이라도 있을순 없을까,일본남자와결혼하면 어떻게든 일본에는 가게 될 가능성이 높은건 빼박 팩트인데. 왜 이렇게 갑자기 모든것이 소스라칠 정도로 일련하리만큼 흘러가고 있는것일까. 남편은 그동안 이야기해왔던 이직문제를 본격적으로 저에게 진지하게 상담해오기 시작했고, 상사분들의 의사와는 달리, 남편은 일본으로 돌아가 더 나은 평판을 받으며 좀더 업그레이드된 회사생활을 하길 원했어요. 물론 아무대책도없이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었고, 사실상 하나하나 계산을 해보았을때, 남편은 타향살이를 뒤로하고, 고국으로 돌아가 좀더 제대로 자리잡고 싶다는 의지였어요.

저는,

한창 진행중 이었던 일이있었고. 개인적으로는 거래처와의 꽤 큰 사업의 준비였으며, 좀처럼 이런 기회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한 분야의 직업에서 한우물만 10년넘게 파야 겨우 만들 수 있었던 한국에서 유일무이했던 절호의 찬스를 앞두고. 그리고, 상호간에 미팅을 마치고 구두의 약속들이 오고간 상황에서, (서류상 약속들이 아니여서 다행이에요ㅠㅠ) 너무나도 암담하고 괴로운 결정에 짧지 않은 날들동안 속태우고 눈물을 흘리며 생각을 정리하고 생활을 정리해야했지요.

결혼을 한 아내로써, 집안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의 그 모든 일을 순식간에 정리해버린채, 여러분들은 외국인 남편과 함께 고국을 떠날 준비를 하실 수 있나요?...저는 저의 일을 너무 사랑했어요.

 

 

 

물론 남편으로인해 오기싫은것 100% 강제적으로 왔다고 볼 수는 없어요. 일본으로 오게된 결과는 결국 어떻게해서든 제가 선택해서 두다리로 걸어온것이고, 끌려온것이 아니예요. 그리고 그 선택과정에서는 저는 자의적으로든 타의적으로든, 제가 원하지 않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던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예요.

일을 정리할때에는, 상호간의 신뢰에 실망을 안겨드리기도했었지만요. 아직도 점장님이랑 허름한 식당에서 눈시뻘개진채 소주한잔 기울이던 그날이 떠오르네요. 다 잘될줄 알았는데, 이제 올것이 왔다 라고 생각하고 할수있는것들 모든걸 준비하고 있었는데................

일본에 온다는것은, 내가 만족하지 않은 선택들이기때문에어떻게해서든 나는 이 기분이, 이 시간들이 싫을것이고, 아주 잠깐은  "정말 이 길 밖에 없나," 라며 남편을 탓해보기도했습니다. 헌데,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어요.

"정말 최악의 상황이왔을때, 그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행동과 언행으로 알 수 있다"고 했어요. 저는 굉장히 조급해했고, 불안해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아직 어떤 큰 일이나 결정을 감당하기에는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에 비해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였어요. 아주 잠깐이었지만, 남편을 부여잡고 울며불며, 나는 떠나기 싫다고, 내일을 하고싶다며 정말 난감해하고, 미안해하기짝이없는 남편의 얼굴은 안중에없이 내 마음속의 이야기하며 울기 바빴어요. 실컫 울었어요. 더 짜낼 즙도 없이 .

 

최악의 상황이 왔을때, 내가 내 나이기준에 오늘날 가장 오래산 날이라고 가정했을때에, 나는 그렇게 울고불며 남편을 곤란하게 하고있었어요. 물론 내마음도 곤란했구요. 남편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며 만나게되었던 많은 한일부부 지인분들에는 가끔 그런 경우가 있었어요.

남편은 고국이든, 타국이든 할일을 하면서 , 부인과 각자 다른 나라에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것을요. 한마디로 기러기 남편, 기러기 아빠의 생활을 하며 일은 일대로, 가족은 가족대로 구분을 두는 것이었어요. 이제 막 결혼한 신혼인 저희에게, 아니. 저에게. 그런 결정을 한다는게, 서로 함께 같은 공간에서 몸섞고 밥먹으며 이제 막 생활을 시작할판에 오히려 그런 다른 분들의 다양한 예의 이야기들은 제 마음속에 절대적으로 와닿지 않았습니다.

물론 결혼을 하기전 연애를 하는 도중에는, 서로 떨어지는게 별 대수롭지 않다는 일본 셰프님도 계셨고 혹은 결국 부인도 한국으로 건너와 함께 생활을 하게된 케이스의 일본인 친구도 있구요. 여러가지 케이스가 있었고, 조금이라도 내 마음을 추스릴만한 이야기들을 찾던 저에겐

성에 차지도 않고 별다른 효과가 없었어요. 도대체 뭘 그리 원했는지요, 그냥 서울에 있자, 그냥 여기있자. 라는 말이 저에게는 약이라고 생각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들만의 각자의 선택이 있는것이고, 각자의 사정에따라 달라지는 것들이고,그누가 어떤 선택이 옳다 그르다 라고 단정지어 입에 가십거리로 올릴 수 가 있는지요.

 

적지 않은 분들이 일본의 문화를 좀더 알아가고, 좋아하기때문에 , 혹은 경험삼아 취업을 해보고싶어 등등, 비자를 발급받아 일본에 거주하는 분들이 많으시죠. 본인이 일본에 가고싶었던 "분명한 이유" 가 있었으니, 어떻게든 그 마음이 통해 무사히 비자를 발급 받고 월급도 받고

행여나 지치는한 자신이 선택한 삶에 만족하며,  타지에서 외국인으로써의 삶을 살고계실겁니다. 언젠가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든것은,

배우자 비자를 받은 사람들은 팔자좋게 집에서 요리나하고  직업의 제한이 없으니 남편 잘만나서 시집 잘왔네, 라며 취업비자 소지자들과 비교하며 집안 돌보는 주부들을 깎아내리는 생각 하실 분들이 몇이나 될까? 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제 블로그 이웃중에는 안계시기를 바라지만 말이예요.

저는 제가 정리하고 온 일을 포기한적이 없습니다. 인생에 몇번 올까말까한 아주 좋은 기회를 놓친 사실에 개인적으로 굉장히 아쉬운 것이었지만, 뿌리에 뿌리를 이어 생각해보았을때엔, 내가 혼자살았을때 가능한 어찌보면 이기적인 고집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상황이주는 별개의 문제들,남들과 같지 않은 환경 그안에서 가장 현명해야하는것은 바로 나 인것인데,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았을때에, 남편에게의 기회, 그리고 내가 꼭 이루고 싶었던 기회, 이렇게 두가지중 어느쪽이 더 무게가 있는 것이냐고 물어본다면 오늘의 저는 함부로 대답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결국 남편은 좋은 직장에서 스카우트를 받았고, 제가 버는 금액의 차이는 월등히 컸지만, 저도 제 일로 버는 돈, 그 누가 버는 돈과 비교조차도 할 수 없이 남부끄럼 없었고, 내가 내발로 뛰어 움직인만큼 벌 수 있었던 내 밥값, 내 사업이었기애, 늘 그렇게 에너지를 소비하며 살아왔기애, 누군가의 아내로써, 그것이 외국인의 아내로써든 뭐든 단 한번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눈앞에서 결정해야할 상황이 닥쳤을때에는

이성을 잃을수밖에 없었어요. 당시엔 그 누군가가 보상해주길 바라는 바보같은 생각도했었어요.

거짓말이지.

꿈같은 시간이 눈앞에 곧 펼쳐질텐데,

도대체 왜?

왜 지금이여야 하는건데.

내가 포기해야하는거야?

 

 

 

한국에 남아 일을 할것인가, 그렇게 서로 떨어져 부부생활을 하게될것인지 아니면,  남편의 상담을 받아 그가 좋은 직장에서 외국인으로써의 삶이 아닌, 자국에서 좀더  반짝 반짝 빛이나는 회사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아내로써 응원하고 내조를 해야하는건지. 주변지인들역시 가장먼저 제가 이뤄온 "일" 에대해서 걱정하기 시작했고, 아무도 모르는 단어를 주변에서 한사람 두사람 들을수 있도록 지금까지 노력해온 것들이 한방에 무너진다는 아쉬움은, 친구들과 가족 앞에서도 숨길수가 없었나봐요. 내가 좀 이기적이었어요.

결혼을 해도 내고집대로 끝까지 일을 챙겨야 하는 사람도 분명 존재할거예요. 그리고 그사람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할 수 없어요. 결혼후 신혼부터 서로 다른 나라에서 그"일"이라는 주제 하나로 떨어져 수년을 살게되었을때에, 그 누구도 장담 못할, 여러모로 생겨날 문제점들.

그리고 그렇게까지 떨어져서, 일을 해야할 지금인가? 너는 일이랑 남편중에 뭘 선택할래?

제 선택은 원활한 가족생활 이요.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사업에 매달려 행하셨던 그 모든 것들, 어린시절 내머릿속의 모든기억들. 집안이 번쩍이던 이유도 아버지의 "일" 때문이었고, 집안이 기울기 시작한것역시 그건 모두 "일" 에 관련된 것들이었어요. 그로인해, 어머니는 무척 외로우셨고, 나름 잘나가는 비서였다해도, 일로 부재중인 아버지에대한 외로움은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어린시절 눈치채고 고통을 함께해야했어요. 근데 그런 제가 일에 집착적으로 매달리고있어요.

내마음속에 어떠한 합리화를 원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고리타분한 기간인 "3일동안"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했어요. 사실 3일로는 불충분했어요. 굉장히 혼란스러웠죠.남편에 있을 인생의 최대의 기회를, 내가 생각하는 나의 기회를 선택하기위해, 거부하는것이 맞는가,내가 양보? 라는 것을 했을때에 펼쳐질수 있는 상황,내가 일을 계속 선택하고 남편이 한국에 남았을때에 펼쳐질 수 있는 상황.

나는 이곳에서의 내 일상들과 매일매일을 함께하지 못할 작별을 고할 준비가 되어있는지.금새 달큰한 봄향기를 눈치채고 벗꽃나들이를 준비하던 언제나의 그 계절과 선선하게 불어대는 수년전 내 코끝을 스치던 그 가을의 바람이 찾아오던 그길위에서의 내 모습과 언제나 가장 누구보다 여름이 찾아오는 향기를 캐치하기 빨랐고, 언제나 그길을 걸어야 슬픈일도, 속상한일도 치유가 되었었던 내가. 결혼을 하고 갑작스런 많은 이변을 겪을 준비가.

되어있던가.?

 

 

물론 계실거예요. 앞도 뒤도 보지않고, 속시원히. 후련히. 기왕 할거, 갈거, 맹쾌하게.  선택할것은 선택하고, 포기할것은 빨리 포기하고. 서로를 위해 구차하게 놓아도되는거 붙잡지말자며 말이예요. 그에비해 저의 고민과 슬픔과 절망스럽기까지한 마음들은조금 이해가 안가실수도 있어요. 어쩐지 저는 제가 할일을 선택하면 불행해지듯이 이야기하고있었다는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지만, 결혼이 현실이라면,  그렇게

현실적인 문제로 입에 오르고 내린다면 그리고 제가 한국에서 마저 마치고 오지 못한 그 일이 일본에서 온 문화라 일본에서 자리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일이라면

일단은 남편의 의견을 따르고, 일본으로 건너가 나의 할일을 충분히 찾아보자. 라는 결론이었어요.  나름대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해가며 계산해서 얻은 결론이었어요. 이렇게도 결론내기 힘들었어요. 내가 내 의견을 포기하는게 너무나도 싫었기때문이예요. 누군가는 애초부터 내릴 수 있는 결론이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쉽게 결정 짓지 못할 정도로, 한국에서의 저의 일의 값어치가 크다는 것을 알고있었기애, 무언가 저의 일을 포기한다는 것 자체를 수용한다는 의미가 너무나 싫게 느껴졌습니다. 저에게 온 절호의 찬스가 너무나도 아쉽게 느껴졌고 그때까지만해도 내 자신의 이득을 계산하기 바밨던 제가 아내로써의 제 자신과 타협 할수밖에 없었어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과 인사를 하지 못하고왔어요.(얼굴을 보고) 혼자서라도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 한국이고, 내 고향이고, 내 모국이라는 생각을 하고있으면, 제가 별로 일본에 살러 와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아요. 그냥 잠시 놀러온 기분으로 , 그리고 그 기분을 지키면서 나름 이성적인 생활을 해야, 씩씩한 기분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주어진 시간은 짧은데, 고민도 오래했고 , 결정하기까지도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일본의 이주에대한 불안감과 긴장감은 , 준비하는 모든것을 서류화해서 한치의 오차도 없도록,  딱딱 맞게 계산하는 좀 피곤한 돌발행동으로 남편을 참 귀찮게까지 했어요.  물론 좋은점도있었구요.

이전에도 공지가 올라갔지만, 일본에 온뒤로,  본의아니게 남편의 도시락을 만들게되고, 또 뭐하나에 푹 빠지면 꽤 전문적으로 건드리는 구석이있어서 나올수있는 일본어 다 털어 너무나 팔아보고싶은 일본 도시락 제품 본사에 무작정 메일을 보내,  "당신들 제품을 내가 팔아보고싶다" 라고 인생에 듣도보도 못한 패기를 보였었죠. 남편이 회사일로 통화할때 사용하던 업무용 인사들을 머리에 박아둔게 있어 최대한 활용해서, 이후에도 영업담당자와 전화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계약과 제품 수량 및 등등을 체크하던 찰나, 한국에 계신, 저와 같은 마음으로 좀더 예쁘고 정성스럽게 도시락을 만들고 싶으신 분들께 예쁜 굿즈를 판매하고싶어 벌어 본격적으로 일을 벌릴 찰나,, 한일관계 악화로인한 한국에서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난판에 잠정 중단 하고 말았지요. 제 선택이었지만.

아직 창고에는 한국에서 했던 사업과 관련된 서류들, 재료들 투성이지만, 꺼내보지도않고, 저는 도시락 굿즈에 눈을 돌렸던 것이에요.

박스속의 재료들은 내년정도에 꺼내볼 예정입니다만. 내가 그동안 살아오며 쌓아온 능력과 경험치로, 타국에서 무언가를 진행할 수 있었던점은 한국에서 마무리짓고 오지 못했던 일들에대한 애착과 집착에 대한 미련이, 다소 타국으로의 이주로 움츠러있었던 마음에

자신감으로 불씨를 떨어뜨려준 느낌이었어요.

한일 관계에 어떻게 언제 변수가 생길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분위기는 장기간으로 이어질듯하고, 주부로써 이제막 일본 이주 생활 5개월째로 접어들 준비를 하고 있는 저는, 요리도 잘하고싶고. 청소도 꼼꼼하게 하고싶고. 남편이 돈벌러나가면 집에서 뭐라도 하고싶고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구상해보고싶고. 아직 젊고 앞날은 창창하다는 인생 선배님들의 힘이되는 조언에오늘 하루도 화이팅하며,

 

한국의 일과 맞바꾼 배우자 비자를 고맙게생각하고

한국에서 이어 못다한일들,

한국과 일본에서 연계하며 열심히 즐기며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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