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출신 한국인

일본생활에서도 이웃은 잘 만나야한다.

2021. 4. 4.

✎ maruko

[Director l Dosirak decorator] 서울 출생. 모바일디자인과 의류업을 거쳐 공예사업으로 독립. 유튜브 "도시락이있는 생활" 편집자

일본생활에서도 이웃은 잘 만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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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글에서는 이야기되고있는 해당 "사건"에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가나자와의 긴 겨울이 끝났습니다. 화창했던 어제, 집을 나서며 남편에게 했던 이야기, "이번 겨울은 정말이지 너무나 길었던 것 같아" 라고, 

네, 개인적으로 이번 겨울은 지난 어느 겨울날 보다도 참으로 쌀쌀했고, 고독했고, 힘겨웠고, 또 한편으로는 보람됨을 느끼기까지 정말 만감이 교차하는 일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매일매일의 하루속에서 이 끝나지 않을것만같던 시간들의 지루함에 그래도 조금이나마 희망을 원하고 또 가져보며

"왜 나지?" "왜 내가 해야하는가" 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면서 정신적으로는 쇠약해지는 듯해도 내 몸은 어김없이 행동으로 움직이고있었고,

우리 부부는 마침내 새로 이전한 삶의 터전에 수십년동안 방치되었던 그 무언가를 바꾸는데에 성공했습니다. 4개월 남칫 매일매일 신경을 곤두세운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우리가 새롭게 이사온 곳은 동네 사람들의 수십년간의 무책임, 무관심, 고의적인 방관, 자신들이 편하게 살기위해 바꾸고싶지 않았던 지독한 이기심이 무섭게도 녹아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곳에 새로운 사람들이 올것이라는 계산 역시 그들에게는 불필요한 에너지였을겁니다. 옳고 그름과는 관계없이 "너희가 따라야해" 의 집단주의.ㄹ

 

몇일전 구독자분으로부터 "마루짱님의 소신과 철학이 궁금해집니다" 라는 질문을 받은 적 있습니다. 단지 눈에 띄는 도시락을 만들어 인터넷에 업로드 하고있는 결과물을 예쁘게 봐주시고 던지신 사소한 질문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 질문을 보고 한참을 생각하게되었습니다.

나의 오늘의 소신과 철학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리고 그것은 무엇일까, 라는 궁금증.

 

내가 이곳에서 경험한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며 모든 일본인이 "저렇다" 라는 것으로 인식하고싶진 않았습니다. 단지 이곳의 사람들이 그러한 것이고, 이전에 살던 동네의 사람들은 또한 이러하지 않았기애 내 눈앞에 보이는 그 모든것만으로 단번에 판단하고싶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최근 우리 부부의 삶의 터전 공간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해결하려 노력하며 , 여러 지역에 거주하는 일본인 친구들, 인생 선후배들 등과 연락을 취했습니다, 그곳상황은 어떤지 다른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는 어떤 해결책을 국가에서, 그리고 시에서 내세우고있는가, 각 시마다 어떤 방법으로 문제점을 해결해가고있는지 조사하기도.

시민들은 어떻게 행동하고있으며 좋은 결과와 나쁜결과, 그리고 찾을 수 있는 법률까지 찾아보며 우리부부는 참 많은 시간을 "이것"에 쏟았습니다. 1년전엔 상상도 못했을 오늘날의 사건.

 

가끔은 너무나 속상해 인스타의 스토리에도 참고참아왔던 마음을 살짝쿵 꺼내 보이기도, 위로받고싶어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도 한 그런 추운 계절이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따뜻한 봄이 올 무렵, 그러니까

그 일들이 모두 해결되고 우리에게도 평온이 찾아올 무렵에 서스름없이 이야기를 꺼내보기로 마음먹었고, 이제 그때가 온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겨울 내내 경험하게 되었던것은 우리가 자초한 것이었습니다. 그저 보여도 모르는척, 불편해도 욕먹지 않기위해 참으며 살아야하는 척, 해야했었나, 하지만 올바르지 못한것을 지나치지 못하는 나의 성격, 그리고 남편의 성격덕분에 몸에서 머리에서 곧바로 반응이 오게됩니다. 

그렇게 그 어떠한 문제점들을 올바르게 바꾸기 위한 노력. 그것들이 우리 삶의 터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때엔 그 성량은 최고치를 발휘하게 되겠지요. 일본 법률과도 위배되는 그 환경에 맞서.

 

 

타당하고 당연한 것인것을, 자신들에게 피해가 올것이 싫어 그룹적으로  조직적으로 움직였던 이기심의 태도, 은근한 따돌림, 

행여나 자신들에게 피해의 일부라도 돌아올까 몸사리며 해야할말도 굳이 하지않고 팔짱끼며 방관하던 그 자세, 눈빛, 표정, 말투, 행동 모두가 저의 머릿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잔상으로 남아버렸습니다. 본인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형태인데도말입니다.

 

이런일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가지 않았어도 됐을, 그리고 우리가 만나지 않았어도됐을 그 사람들, 그 장소들을 . 지금은 우리가 경험해서 참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게되었습니다.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 부부가 알게되는 정보의 영역은 움직이는 만큼 넓혀져만 갔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살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들에게 피드백을 받으며 우리는 우리가 처한 환경을 벗어나거나 도망가기는 커녕 고쳐 개선해나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수십년을 산 이 동네사람들이 "협력" 해주기를 자치회의 모임에서 몇번이고 강조했지요. 시청에는 개별적인 담당자가 생겨 지속적인 어드바이스, 시청으로부터 협력도 받게되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그냥 쉬쉬하며 자신들에게 맞춰줄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를 동네사람들은, 우리들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관찰하는 듯 싶어보였습니다. 가만히 당하고만 있진 않을거라는 기운은 은연중에 전해졌을거라 생각이 듭니다. 지금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을 해왔고, 그것을 방치하고 있는것인지, 우리 부부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닌, 국가에서의 경고라고 해도 좋을 정보들 역시 서류화 해두었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들에 대한 현재까지의 상황, 개선해가야할것들. 그리고 개선해야하는 이유, 피해상황. 사진자료 그 모든것들을 서류화하여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거나, 하나하나 세세하게 짚고넘어가지 않으면 , 교묘하게 피해가는 수법을 쓰려는 동네 사람들의 무책임함을 두배 세배로 감당해야했으니까요.

 

"새로 이사온 주제에 시끄럽다" "외국인 여자가 말이 많다"(대부분 여자들은 조용하고 남자들이 이끌어가는 사상이 강함) 그리고 그 이상의

외국인으로써 듣기 거북한 인종차별 발언까지.

삼십수년을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살다 요 몇년 사이 가나자와로 이주한 제가 듣기엔 참으로 올드하기 짝이없어 신박하기까지한 고리타분한 시골 욕덩어리 같이 느껴졌습니다. 아직까지도 여자라면 입다물고 살아야하는 그런 개념속에 살고있고있다 라는것은 매일매일 보고 듣는 이야기와 사람들의 모습들에서 충분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야기하고싶었습니다. 

 "네들이 남자든 여자든 내겐 상관없어 당신들의 무책임이 켜켜이 쌓여 지금 어떤결과를 낳았는지, 새로 이곳에 삶의 터전을 이루기위해 온 많은 세대주들에게 어떤 피해를 주고있는지, 앞으로 어떻게해야하는지, 너희가 모른다면 내가 알려줄게." 라는 심보로 시작되었으나,

무척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작성된 서류 등을 만들고 준비하여 수차례 표현하고 공고하였습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늘 함께 움직이고 함께 의견을 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불평불만을 내세울뿐, 누가봐도 헛웃음만 나올만한 변명과 핑계등을 앞세우며 자기몸사리고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그 모습을 눈앞에서 본다는것이 참으로 참담한것.

 

본인들이 벌려놓은 것에 대해 그누구도 해결하고자하는 의지도, 문제점을 알면서도 인식하고싶지 않은척,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멍청하고도 어리석고 민도가 낮음을 느끼게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다시한번 듣게 되는 말은

"이사온 사람들이 참 말이 많다" 그리고 그 발언들과 사상들로 보여지는 태도들은 새로 이사온 국제 부부들을 참으로 열받게 만들었고 더더욱 단합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이야기하자면, 가장 문제가 되었던것은 결국엔 4개월정도가 지난 지금의 시점, 해결이되었고, 그들역시 우리들의 이야기에 따를 수 밖에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본인들이 무시하고 방치해왔던 시간들에 벌이라도 받듯, 앞으로는 그들이 움직일 수밖에없게되었습니다.

마침내 따뜻한 봄이 찾아온 것 같았습니다.  물론 이 일을 해결하기까지 우리를 도와줬던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들역시 단번에 우리를 쉽게 도우려했던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존에 살고있던 곳의 사람들의 조직속에서 우리를 돕는다는건 그 누군가들에게는 눈에 띄는 행동이었을지 모릅니다.

 

일본인들의 속도에 , 그리고 성향에 맞축기 참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일본인 남편은 늘 저에게 이야기했죠. "마루짱, 이럴때엔 이렇게 하는게 좋아. 좀더 기다려보자."  한국이라면 다이렉트로 문제점을 전달하고 해결하려고 할수 있었던 것이, 이곳에선 몇사람 입에 거쳐 전달되어 그사람이 해결해줄때까지 기다려야했습니다. 그래. 일본이니까 그래야지.

 

개인과 개인이 직접적으로 불만을 전달하는 것은 금물과 같은것. 동네 자치회, 반장, 회장을 통해 먼저 전달해야하기애, 어떤 일로인해 기분이 오지게 다운되거나 지금 바로 처리하지않으면 곤란할 상황 역시 우린 윗사람에게 이야기하고 기다려야합니다.  이것은 일본은 사회적으로도 가지고있는 형상이기애, 이부분은 도무지 익숙해지기 어려운 부분이었어요. 가끔 이런경우를 맞이했을때 자주 중얼거립니다. 

"또야? 빌어먹을."

 

그 수많은 서류를 봐도 자신들이 올바르게 해온일은 단 1도없었던것을 부정할 수 없었던 이곳 기존의 주민들은 시청의 피드백을 토대로 계획된 앞으로 개선해야할 사항을 기준으로 총대를 들고 문제점과 의견을 내밀었던 우리 부부가 제시하는 방향에 따르는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전체 에어리어에도 공지되었습니다. "XX에서 XXXXXXX를 시작하게되었다."

 

이 일이 해결되기까지의 4개월 넘는 시간들동안 나는 왜 혼자서 이 많은 서류들을 만들어야하는가. 왜 나혼자 이렇게 고민을 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하는가에대한 불평불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속상했고, 때론 심리적인 압박감으로 눈물이 흐르기도 했습니다.

 

그래. 해결할 수 있는건 우리뿐이야, 너무나 답답하고 참담한 심정이지만

곁에서 이성적으로  "지금 확 바뀌진 않지만, 하루하루 천천히 해결책을 제시해보자. 너무 오늘 당장 바꾸려고 욕심 부리지말자. 그럴수록 너만 더 힘들어져" 라며 저를 리드해준 남편 덕분에저도 성질 죽이고 그나마 조금이라도 이곳의 스피드에 맞춰 릴렉스 하는 척이라도 할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올해부터 에어리어 회장과 동네 반장은 바뀌지만, 이전 회장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한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이 긴시간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일이 해결될 수 있었던것은 XXXX부부(남편 이름대며)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라고.

일이 해결될 수 있도록 도와죽기는 커녕, 오히려 방해를 놓고 누구보다 적극적이지 않았던 회장에게 듣는 이야기라 딱히 기쁘지 않았습니다. 앞에서는 인심 좋게 웃으면서도 뒤돌아서면 거짓말을하고 이간질하는 그와 그 누구들을 알고있기애. 내가 할 수 있는것은 나또한 당신에게 인심좋게 한번 웃어버리는것. 그게 외국인 거주자로써 최대한의 매너였습니다.

 

그렇게 또한번 저는 제 인생의 소신, 그리고 철학에 영양분의 살이 덧붙여집니다. 

경험이라는것도 참 중요하지만, 그것에서 느끼는 기분, 또 그 기분을 분해시킬줄 알아야하는 영리함, 더 현명하게 대처해야하는 방법.

참으로 다양한 성분들과 그것이 사용된 결과물로 나의 오늘의 소신, 또는 철학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든든합니다. 그렇게 우리를 도와주는 시청의 담당자가 생겨났고, 어느정도 일이 해결된 이 상황에도 앞으로지속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 관계와 길의 끈을 만들어온 시간들에 그리고 우리의 노력에, ¥한치의 의심도 갖지 않아주었던 사람들에게 깊이 감사할 따름.

또한 우리와 같은 환경에 놓인 사람들이 곤란에 처할경우 여러가지를 제시하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력을 갖추게 된 것 같아

그점은 무척 만족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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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생활에서는 한국보다 좀더 대인관계에서 많은것을 바라지 않는것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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