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Korean, and live in Japan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는 인류범죄, (일본에서 식재료고르기&일본인반응)

2021. 4. 27.

✎ maruko

maruko¦Bento Decorator ✍🏻서울출신 일본거주, 프리랜서 디자이너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는 인류범죄, (일본에서 식재료고르기&일본인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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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염려>

 

* 본 게시글은 뇌피셜이 아닌 사실에 근거한 정보에 저의 개인적인 시선/의견으로 작성되어있습니다.

혹시라도 일본에 사시는 분들중, 혹은 일본 거주중이 아니더라도 이 글을 보게되셨을때에, 막연한 반감,

예를들어 "기분나빠, 그럼 걱정 안하고 고르는 나는 이상하다는거야?" 라는 반응을 보이기시 전에

최근 일본 정부가 결정한 원전오염수 해양방류관련해 수년 후 자신과 자신들의 자녀들까지 몸속에 들어가는

식재료들까지 오염될 가능성과 메스컴에 담고있지않은 실제 일본인들이 점점 느껴가고있는 그 무게감에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신 뒤 저의 글을 읽으시거나, 과감하겍 닫기 버튼을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비난은 사양하겠습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에 보관중이던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기로 최종 공식 결정했다.

 

사진은 그린피스 재팬 캡쳐

 

설마설마 했습니다.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바다로 방류 문제에 대해 , 이미 수년전부터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나역시 마음속으로만 제발 아니길, 제발 아니길 바랄뿐 일본 정부로부터도 확실히 공식적으로 발표된바 없었기애.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아주 먼곳의 화산폭발의 폭풍전야속에서 살고있다고 생각해왔다. 끊임없는 역사 왜곡부터 최근 경제 보복으로 이야기된 한일 무역분쟁사태까지 , 아무리 내 동반자인 남편의 나라의  뿌리라하지만 미워도 그렇게 미울 수 없는 일본이었습니다.

 

처녀시절 자영업을 하며 출장차 처음 일본을 오가기 시작하게 되었던게 일본과의 직접적인 첫 인연이었습니다. 딱히 유학생각한적도, 학원을 다니며 일본어를 공부한적도 없었으며, 취업을 생각한적도 없었던 내가 한국에서 만나 결혼한 일본인 남편과함께 일본으로 이주한 뒤, 어떻게든 이곳에서도 내 인생을, 우리 인생을 살아가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알지도 못하던 지역에서 불안함 반 , 호기심 반으로 그렇게 시작했던게 불과 2~3년 전. 모든  외국 거주자들이 그렇다지만, 특히 일본에서 내 개인적으로는 한국인으로써 애국심이 더 커져만 가는 케이스가 되었고 TV만 켜면 사실과 다르게 한국을 왜곡해 방송하는 영상들, 소위말해 한국을 까기바쁜 패널들, 소문으로만 들었던 것들을 직접 TV앞에앉아 마주하니 나의 분노는 정말 커지는건 시간문제였습니다. 그럴때마다 조용히 채널을 바꾸거나, 넷플릭스로 리모콘을 클릭하는 남편.

 

실제로 한국에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일본인데도, 일본 정부는, 그리고 매체는 아직도 일본 국민들을 너무 가볍게 취급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오전시간대의 방송에서의 한국 까내리기는 집에있는 노인들및 중장년층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기 가장 좋은 찬스일지도 모르지요. 10년전, 3년전 일이 아닙니다. 불과 몇일 전만해도 한국을 수시로 곱씹고 사실과 다른 거짓방송으로 시청자들을 혹하게 만들기 바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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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일본의 방사능 수치를 이야기하면 늘 한국의 방사능도 만만치않다 라는 이야기로 반론을 하는 이들이 존재합니다. 우리나라 방사능 수치가 높은 이유는 체르노빌 사고시 유출된 세슘 때문이기도하며 화강암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국내에서 원전이 폭발한적은 아직 없으며, 세계적인 환경 단체에서도 합리적인 이유가 가늠될만큼의 피폭된 어린아이들 성인 노인 할것없이 백혈병이나 암으로 사망한 사망률이 현저히 높아지거나 그것에 통계화가 되어 사회적으로 문제가 커지거나, 현지의 사람들의 증언의 유무, 과일을 수시로 건조시켜 갈아내 파우더로 만들어 세슘양을 측정하는 현민단체까지 만들어낼 정도의 일본의 상황과, 현재의 한국 방사능 수치와 식재료들에 끼쳤을 영향을 막연하게 비교하며 논하는것은 다소 무리가 있어보입니다.

 

일본역시 오염수를 다른나라에서도 방류하지않느냐, 왜 일본만 가지고 그러느냐 라는 말도안되는 이야기를 하고있지만, 하루에 방류하는 양이 1.5리터도 아니며 수십만톤에 이르는 오염수를 3일 4일도 아닌 30~40년동안 방류하게됩니다.

 

동일본 대지진 후 , 그리고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폭발 이후 서울에 첫 비가 내렸을때에, 다들 목숨걸고 그 비를 맞지 않으려 노력했던 그날이 생각납니다. 빗방울을 조금이라도 튀겨 맞으면 피폭될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에 많은 사람들은 우비에 우산을 중복으로 장착하고 길거리를 돌아다녔고, 저역시 밖엔 나가기도 싫었던 것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남일에는 관심도없이 살 것 같은 개인주의 일본에도 따뜻한 마음과 용기있는 의견을 내는 사람들은 존재합니다. 아닌 사람들에 비해서는 부각되는 정도가 극히 적지만 말입니다.

 

그린피스 재팬 서명 창 www.greenpeace.org/japan/

 

 

 

 

 

 

 

 

"누가 일본에 살래?" "바다에 휩쓸려 사라져버려라 일본!""곧 망할거야 일본!"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2011년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발생했습니다. 일본 후쿠시마의 수많은 사람들이 수십년 가꿔온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그리고 소중한 가족, 친구들 등 생명들까지 잃었습니다. 눈앞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어린 남자아이를 이모가 꼭 앉고 울부짖던 한 장면을 잊지 못합니다. 한간에는 그런 농담이있습니다, 한국을 그렇게도 괴롭혀왔고, 현재에도 그러기애 자연재해국으로까지 인식된 일본이라는 나라에 신이 준 벌이다. 라는 농담입니다. 일본이 미운 마음에 나온 농담이라고는 하나 사실 사람이 할 수 있는 농담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일본, 침몰해버려라!""방사능 먹고 피폭해라~!" 등, 우리중 누군가들는 이런 말들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봤거나, 들어봤거나, 그리고 지금 이순간에도 이야기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일본이 미운 마음에 이런 1차원적인 비난의 말들을 생각해본적은 있지만, 사실 입밖으로 쉽게 발설해봤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 이유를 굳이 생각해보자면,  3년 전, 남편과 한국에서 결혼을 한 뒤 얼마 되지않아 일본으로 이주를 하게되었던 내가. 그리고 그렇게 내가 선택한 나의 운명이 , 적지않은 사람들의 인생이 바다에 가라앉고 망해버리길 바라는 그 나라 일본에서 현재 진행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태어나 정치가 어찌되었던 유년시절의 기억이. 인생의 추억이 만들어진 자신의 나라가 바로 일본이기때문이기도 합니다.

 

역사적인 문제부터 최근의 경제 보복까지, 결혼하기전에 강하게 품고있던 "미움"도, 곁에 함께 있는 일본인들을 생각하며 과거에 비해선 적당히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유튜브에 보이는 여러 영상들의 댓글들을 보아도, 사람들은 그 나라에 자신들과 같은 민족의 국민들이 살고있다라는 사실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는 정말 단순한 1차원 사고로 일본이라는 땅히 증발해버리기를 이야기하곤합니다. "한국인도 살고있어요" 라고 이야기를 잘못 꺼내버렸다간 "일본은 니들이 선택해서 간 곳이니, 굳이 그런이들을 감쌀필요는 없잖아?" 라는 답변이 돌아올것이 분명하죠. 그래, 압니다. 그들의 그런 1차원적이고 원색적인 비난은 딱히 현실적이지 않아 와닿진 않는다는것을.

 

일본에 가서 살고있는 한국인, 이라는것은 우리들에게 한가지의 무언의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바로 "일본을 좋아하는 사람" "그러니 거기 가서 살고있는것이지" 라고 말입니다. 역사적으로 어쩔수 없이 끌려가 일본 땅에서 삶을 살게된 우리 조상님들, 그리고 그 후손들과같이 특별한 이유 이외에는 , 단지 일본이 좋아서, 애니메이션, 연예인, 일본어, 일본의 풍경, 여행에서 느낀 쾌적함 등등에 매료되어 끊임없이 더 큰 일본을 만나보고싶은 이유로, 그렇게 일본을 선택해서 가서 살고있다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는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애초에 일본에서 살 생각도없었고 그럴 욕심도 없었던 사람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일본땅에 살고있는 사람들도 드물지만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래도 저래도 그 누군가들에겐 단지 "그래도 어쨌든 일본에 사는걸 (좋아하니) 선택한 사람들" 이라며 치부하겠으나, 당신의 인생이 소중한 만큼 그런 인생들이 존재하는 그 어디든 땅속에 가라앉아버려야하는 그런곳은 애초에 이야기될 수가 없는것입니다.

 

 

 

 

 


 

오늘은 내가 호쿠리쿠 지역의 한곳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에 이주해 살면서 갖게된 처음엔 "의심"에서 오는 "관심",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어 매일 일상으로 전개되어버린 "자연스러운 일상의 습관" 등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제대로 적어보고싶었던 글이었지만, 딱히 이렇다할 계기가 없어 선뜻 주제로 담기가 무거웠던 글이기도합니다. 이번 일본 정부의 결정(동일본 대지진으로 폭발한 후쿠시마제1원전 오염물 해양방출 공식 결정) 은, 이글을 쓸 수 있게해준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주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록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의 모국이 아니지만, 앞으로 우리가 세금을 내고 살며 지낼 이 땅에서, 그리고 한나라의 국민으로써(남편이)보호받지 못하는 대상이 된다라는 기분을 먼저 느껴본 한국인 아내로써,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는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닐것입니다.

 

 

 


 

❮ 내가할 수 있는 최선 _ 일본에서 식재료의 선택방법 ❯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에대해서는 굳이 이유를 찾아가며 비판할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정도로 비윤리적이고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일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엇을 사서 먹던 이성적으로 기분나쁘지 않게 조언을 해줄 수 있을지언정 나와 다르다고해서 아니꼽게 보거나 비난할 일은 아닌것입니다. 모두 그들의 선택이며 나는 그들의 선택에 직접적으로 간섭해선 안될것이다. 이글을 보는 당신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내가 일본에서 생활하며 개인적으로 조심하고 있는것들, 이제는 하나의 일상이 되어버린 자연스러운 것들을 오늘 포스팅에서 나열해보고자 합니다. 언급될 수 있는 관련 지역이나, 그 근처에 살고계신분들께는 불쾌함을 드릴 수 있어 죄송하지만 인터넷에서 검색 가능한 방사능 정보들, 그린피스 재팬의 조사/연구자료를 참고. 또한 이번 후쿠시마현 원전 오염수 방류관련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던 인근 지역의 세슘 관리문제등에 지속적으로 관심있게 지켜봐온 우리 부부의 생활 방식이자,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인 것이므로 이점을 반드시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과거 자궁수술 후 집안의 모든 식기를 플라스틱에서 > 법랑, 유리 등으로 바꾸고 플라스틱 비닐 대신 실리콘 팩, 그리고 비닐랩 사용을 줄이고 에코랩과 종이 시트지 등을 사용하며 내가 가장 쉽게 실천이 가능한 환경 바꿔가기를  시작했던 한 한국인 주부의 기록이라고 해두겠습니다.

 

 

일본 정부가 2023년부터 3~40년에 걸쳐 조금씩 원전 오염수를 방류하기를 공식적으로 결정한 가운데에, 내가 살고있는 동해바다를 마주한 이시카와현 역시 안전하지 못할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미, 우리가 확인하지 못한 두려움이 와있었던 중일지도 모른다. 단지 심증만 있을뿐, 물증을 찾았을때엔 이미 많이 늦었을지도요. 그리고 일본의 방사능을 비웃던 그 많은 사람들 역시 자연스럽게 세슘이 검출될 많은 식재료들을 먹을수밖에 없게되는 세상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는것은 합리적인 의심이 들게 됩니다. 이글을 보는 당신도 나도 피차 마찬가지인 인생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번 일본 정부의 결정으로말예요.

 

 

 

 

 


 

1. 제조 공장과 유통업체의 주소를 꼭 확인한다.

 

장을 볼때는 반드시 제품 정보의 * 제조공장주소 *유통회사주소 이 두가지를 꼭 확인합니다. 제품의 뒷,아래,옆면 등 제품 정보부분에 기재되어있습니다. 때때로 둘중 하나의 주소가 누락되어있을때가 있고, 그리고 어쩔땐 둘다 기재가 되어있지 않고 "고유번호확인"만이 기재되어 소비자가 따로 인터넷으로 찾아봐야하는데, 대표적으로 알파벳화 하여 지역을 붙어 제품에 기재해두는 좋아하는 과자중 하나가 한국사람이 좋아하는 "카루비 쟈가리코"입니다.

 

과자 한부분에 원사지로 알파벳 "B"가 써있다면, 다른 표면엔 " A.도치기 B.후쿠시마 C.기후".. 등이 기재되어있으며. 알파벳 B = 후쿠시마 공장에서 만들어진것 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감자성분의 그 감자, 기타 재료들의 뿌리까지 찾아야하는것인데 소비자가 일일히 공장에 전화해서 물어볼 일도 현실적으로 쉬운일도 아닉고, 물어봐도 제대로 답을 해줄지도 모르며 이러한 행동 자체가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쉽지 않은 점을 고려해 주부가 할 수 있는것은 최대한 원산지가 정확한 식품, 최대한 만들어진 공장의 위치를 파악하는 정도입니다.

또한 후쿠시마 원전 폭발이 일어난 뒤에, 먹으며 부흥시키자 라는 홍보를 걸어 내세웠을때에 그것에 함께 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일본의 많은 브랜드 기업들의 리스트는 공공연하게 알려져있습니다. 일본에 사시는 한국분들이 공유하신 브랜드 포함해 구글에서 검색으로 정보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2. 고기와 생선

 

가능한한 일본 내에서 "국산" 이라고만 기재된 고기, 또한 유별나게 저렴한 고기들은 처음부터 선택하지 않습니다. 일본 내에서 일본인들끼리도 뒤숭숭하게 들리는 소문중에 하나는 후쿠시마에서 잘 팔리지않는 고기들을 저렴한 금액에 전국으로 , 특히 도쿄로 적극적으로 내보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선택한다면 냉동상태였기때문에 질은 떨어지지만 꽤먹을만한 미국, 호주산이 오히려 보관이 하루이틀 더 길어도 잡내가 나지않아 마음놓고 선택하게되는 상황이 된지 오래입니다.

 

또한 이시카와현은 노토지역의 고기인 "노토규"가 특산물중 하나인데 이렇게 개인적으로 그나마 안심하는 원산지의 출처가 분명한 곳을 제외하고는 "국산"이라고만 표기되어있거나 특별한 이유없이 1+1인경우 등은 경계의 대상이 되었으며 구매하기 어려워집니다. 명쾌하게 나라에서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한 국민들의, 저같은 일부 외국인들의 의심되는 트라우마라고 해야할까요.

 

이시카와현의 마트에선 대부분 이시카와현의 생선들을 취급하는 편입니다. 물론 다른 지역의 어류도 적진 않습니다. 육류처럼 원산지 없이 저렴하게 판매하는 제품은 거의 없는 편인데, 이시카와현 자체가 그리고 가나자와 근처가 곧바로 동해바다로 연결되고 강원도 속초와같이 해산물이 유명, 그리고 오미초 수산시장이 메인 관광지인만큼 이곳 어민들은 이시카와현의 바다에서 잡히는 많은 물고기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시카와현 이외에도 본래 일본의 지방 도시들은 프라이드가 높기도하고, 특산물이 자부심이기 때문에 이곳 마트에서도 언제나 이곳 현의 생선들, 아침에 갓잡은 생선들을 매일매일 볼 수 있습니다. 식품을 취급하는 인근 지역의 대부분의 식당이나 레스토랑, 카페에서도 이시카와현의 지역 특산물을 주로 사용하거나 메인으로 내세우며 계절별로 이벤트를 여는 등 기본적으로 이시카와현의 제품들을 사용하므로 이점 역시 원산지없이 타지역의 재료들을 가져와 고객에게 오픈하는 일은 거의 없으므로 (대부분 원산지를 알려줌) 내가 하는 그 부분의 걱정은 덜 하게 되는건 사실입니다. 허나 긴장은 늦추지 않는다.

 

그렇게 매번 신경써서 스트레스 받지 않느냐, 예민해서 어떻게 사느냐 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면, 주부로써 식재료를 사면서 원산지 이외에 제품 정보를 알아두는것, 매번 체크하는것이 뭐가 그렇게 귀찮은 일인지를 반문하고 싶어집니다. 굳이 이야기를 한다면 건강이 한번 망가졌던 사람은 유독 식재료에 더 신경이 쓰이는 법이고 요즘같은 때에는 더 그러한 것 같습니다. 그냥 집히는 대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개인적인 판단으로 꼼꼼하게 체크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본인의 성향대로 살아가는것이다.

 

저역시 가나자와에 처음 왔을때에, 장을 볼때엔 유통기한 날짜만 보고 잡히는대로 모두 장바구니에 담아왔습니다. 어느 순간 깨달았지요, 조금씩 조심해가야하지 않나, 라는 걱정이. 

 

덧붙여 이야기하자면 후쿠시마 근처 바다에서 일하는 어민들의 양심고백 다큐멘터리들을 본 이후부터는 무조건 이유없이 저렴하게 땡처리하듯 판매하는 원산지없는 제품들은 한번 두번 의심하게 됩니다. (참고로 후쿠시마 인근 바다의 물고기들은 대부분 도쿄로 저렴하게 판매된다고 하는데요. 최근에 나온 방송에서본 이야기이며, 거짓말 안하고 어린아이 얼굴만한 회 한조각으로 탑을 쌓은 카이센동이 1,500엔밖에 안하는 후쿠시마 인근 지역의 가게가 몇일전 저녁방송에 나와 화제였습니다. 남는 것 없이 장사한다 할지라도 장사해본 사람들조차 아는 사람은 안다는 그 저렴한 이유를 일본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현제까지도 검출되고있는 세슘 이야기를 빼지 않을 수 없는것입니다.) 

 

우리동네 마트 연어는 100프로 칠레산 연어가 판매되고있으며 (다른 지역은 어떤지 모르겠음) 샤케는 개인적으로 원하지않은 지역일 경우가 대부분이라 나는 연어를 구매할 경우엔 칠레산을 구매하고 있습니다.⠀ ⠀⠀⠀⠀⠀⠀⠀⠀⠀⠀⠀⠀⠀

 

 

 

 

石川県野菜JAグリーン金沢

3. 야채

 

야채는 이시카와현을 비롯한 후쿠이, 도야마현까지의 일명 "호쿠리쿠지역" 특산 야채들을 주로 구매하고있습니다. 해당 지역의 야채만 판매하는 브랜드(JAグリーン金沢)가 있으며 대부분 보기 힘든 싱싱한 야채를 구매할 수 있는 소매시장입니다. 100프로중에 10프로 정도가 타지역 야채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오미초 시장에 야채상점들 역시 나의 목마른 갈증을 해소해주고있어요.

 

오이가 정말 필요하지만 이마트를 가도, 저마트를 가도 똑같은 원산지의 야채들이 한동안 쫙 깔릴때가있습니다. 이바X기현의 양배추가 그렇고 군X/후쿠X마현의 오이가 그랬습니다. 그럴때엔 깨끗하게 요리의 메뉴 종류를 포기하는 편이며 다른 야채로 대체해 다른 요리를 만들곤합니다. 일본에 살며 사과를 먹기란 정말 힘든 일이 되었습니다. (사과는 마트에가면 외국브랜드 수입사과 아니면 100프로 아오X리현일 경우가 태반) 또한 곤약은 군X현이 유명하므로 치쿠젠니 혹은 미소시루 등을 만들때 마음대로 집어와 구매하기 또한 쉽지않습니다.

일본의 낫또 하면 이바X기현이 대표적이므로 굳이 낫또를 먹는다면 이곳 현의 대표 낫또 두 브랜드정도를 마트에서 선택할 수 있어요. 복숭아역시 일본에 온 뒤로는 입에 댄적이 거의 없습니다. (딱 한번 카페에서 먹음)

 

실제로 특정 지역의 야채들(내가 사기 꺼려하는 지역)은 최소 몇엔부터 몇십엔까지 (원화로 몇십원에서 몇백원) 저렴하게 진열되는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저렴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코너는 금방 동이 나 버립니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방사능이고 세슘이고 상관없이 저렴하니 바로바로 집어갈 뿐입니다. 하지만 방송 인터뷰에서도 나왔듯이 "저렴하지만 되도록이면 사지 않으려고해요" 라는 인식을 가진 시민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4. 과자

 

우린 과자나 쵸콜렛 등, 간식류들은 잘 먹지 않습니다. 선택하게 된다면 언제나 제조 공장 주소를 확인합니다.

참고로 스낵코너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지역특산물"로 구성되어있지 않을 수 있는 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사먹는 젤리같은 경우는 단순히 "도쿄"주소만 적혀있기애 구분하기 힘들어요.

 

 

 

5. 물

 

물은 수돗물을 끓여먹는 편입니다. 이는 한국 할때부터 나의 습관이며 패트병 생수를 정기적으로 사서 먹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플라스틱 쓰레기가 많이 나올 것 같아 일단 주전자에 수돗물을 끓여서 먹고 있습니다, 일본은여러 국가들 중에서도 특히나 잔류염소율이 1위를 찾이한건 오래전 일, 이점 역시 고려하고 있습니다.

 

잔류염소는 수돗물 전달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세균을 고려해 세균 번식을 막는 약품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데,한국에서도 그렇지만, 물을 끓여먹으면 잔류 염소도 각종 세균까지 제거될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릴적 할머니 손에서 자란 나는 늘 수돗물을 끓여서 보리차를 만들어주셨던 영향을 받아서인지 한국에서 남편과 살때에 삼다수를 사먹던 남편과 다르게 물을 따로 끓여먹는 습관을 쉽게 버릴 수 없었습니다. 또한 잔류염소는 물에 끓이면 대부분 사라지는것으로 알려져있는데 일본의 수돗물은 최대한 오래 끓여서 먹고 있습니다. 

 

지진및 자연 재해가 났을때 들고 대피할 안전 가방에 넣을 비상물(및 비상식량) 역시 내가 걱정하는 지역의 제품이 꽤 많아 구매시 모두 확인하고 구매하거나 별도로 채울 것들을 사면서 따로 확인합니다.

 

 

 

 

6. 쌀

 

쌀은 이시카와현 햐쿠만쌀 을 구매해서 먹고있습니다.

가나자와 시내에서 어디에서든 판매하는 브랜드이며 이외에도 대표적인 쌀들이 몇개 더 있습니다.

현지에서 생산한 쌀이 종류가 꽤 됩니다.

 

 

 

 

 

 

 

굳이 6개로 나뉘어 설명해보았지만, 이밖에도 수많은 식재료 역시 앞서 언급한 제조사및 "생산공장주소"를 반드시 체크하는 편입니다. 사던건 또 사는편이라 확인안하고 그대로 집었다가 같은 제품이라도 만드는 공장이 여러 지역에 분포되어 같은 상품인데도 가끔 공장 주소가 다를 때가 있어 개인적으로는 심장이 따끔 할때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패키지의 뒷면과같은 제품 정보는 기본적으로 장바구니에 넣기전에 꼭 확인을 하는것은 "꼭 해야할일" 을 넘어 그냥 나의 하나의 생활 패턴이 되었지요.

 

내가 살고있는 이시카와현같은 지방도시는 앞서 말한바와 같이 특산물에 자부심이 넘치는 곳이라, 현지에서 난 식재료들을 메인으로 내세우고 또 기본적으로 우선순위를 두어 판매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일본의 지방지역이라면 그 어느곳이라도 같을 것이이예요. 때문에 내가 기본적으로 이 글에 언급해온 이시카와현의 식재료들 이야기가 내입장에서는 딱히 자랑하기위해 언급하는 것은 아니라는것입니다. 나에겐 내가 살고있는 지역이 보편적인것이고 일상이기 때문이지요. 세슘검출이 공공연하게 알려진 곳의 지역 식재료를 선택하는것 보다는 살고있는 지역의 특산물을 먹는것은 저의 입장에서는 좀더 안심일 것이고 더 나아가 서쪽 지역의 (니시니혼) 재료들을 우선적으로 택하게 되는건 나의 생활 패턴 현 주소입니다.

 

일본의 도쿄 올림픽 시즌이 다가오니 각 방송에서는 히가시니혼(동쪽 일본), 특히 후쿠X마 , 군X, 이바XX 등등의 지역 음식들, 식당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방송하곤합니다. 가끔 바꿔서 생각해봅니다. 대한민국에서 그러한 원전 사고가 일어났고, 광주던 대구던 그 어디던 어떤 지방 도시에 대한 세슘검출,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후유증등등으로 소아암환자가 늘어나고 암 발병률이 높아지고,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면 어땠을까, 물론 지금의 한국의 국민들은 그것을 두는뜨고 지켜보고만은 있지 않을거라는 생각, 믿음, 확신같은것들이 제 마음속이서 일어나고는 있지만, 이렇게 내 개인이 지켜본 어느 한 사건으로 인한 생각, 그리고 그것은 나 혼자만이 아닌 다른 많은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함께 사 먹고 살아가는 음식재료에대해 그 누군가에게는 위화감이 들 수 있는 주제에대해서 블로그에 적어내려가는것이

과연 잘 하는 일인가 라는 생각.

 

 

하지만 제가 어떤 시대를 거쳐오고 살아왔는지를 되돌아봅니다. 맞는말인데도, 주의해야하는 말인데도 참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신의 의견을 쉬쉬하고 감정속이기에 급급했던 시대를 저또한 살아왔습니다. 말하면 유별난 인간취급, 이상한 인간취급, 다 조용히 있는데 왜 너는 떠드느냐 등등 그룹적으로 움직이는 움직임에 함께 물들지 않으면 낙오자 취급 당하는 것들은 최소한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발언 앞에선 보류되어야할것입니다. 

 

코로나가 닥쳐보니 뒤늦게야 환경에 대해서도 되돌아보는 후회를 하게되었지만, 우리 인간들은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를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결정은 정말 너무나도 뻔뻔하고 공개적으로 우리에게 "예고" "통보" 된 이야기입니다.

아직 자녀를 두고있지 않은 두 부부의 생활이지만, 나, 우리식구, 더 나아가 자녀가 있는 분들 등등 그언젠가 방류되는 오염수의 여파로 후손들에게 정말로 치명적인 미래를 남길것이라는 합리적인 의구심에서 오는 걱정거리가 존재합니다.

 

지난주, 그린피스 재팬에 반대서명을 내었습니다. 내가 어떤 생각과 의견, 그리고 소신을 가지고 있는가에대해 조금이나마 동참할 수 있는 모든것들에 고민없이 참여하고싶어집니다. 또한 일본 내에 어떤 의견들이 있는지 검색하고 찾아보게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당장엔 "우리일, 내일" 이 아닌것 같아보여도 분명 우리의 생명을 위협할 시간들의 D-day가 시작된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오늘 포스팅에서는 일본에 살고있는 저의 식재료 선택에 방법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해보았습니다. 환경적으로는 전문지식이 해박한 편이라고 할 수 없기애 저의 현실에서 진행하고있는 소소한 이야기거리들을 기록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트위터에서 찾아본 일부 일본인들의 트윗을 가져와봤습니다. 캡쳐 기사는 마이니치 신문의 트윗 계정에 올라온 사진이 대부분 거짓 정보라며 비난을 받는 상황이었습니다만

변하지않는 사실은 방사능이 검출된 쓰레기, 흙더미들을 넣은 검은 봉지는 후쿠시마 내에 정말 많이 쌓여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그것이 다른 지역으로도 나가고 있다는 소문에 , 저역시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까만 봉투만 봐도 닭살이 돋게됩니다. 

 

 

 

 

 

 

트위터에있던 마이니치신문 트위터 사진과 글, 실제 이 기사는 허위사실이라며 적지않은 "일부 트위터사용자 일본인" 들에게 비난을 받고 있다. 실제 성화봉송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과는 별개의 곳과 차량을 찍었다는 논란이 이야기되고있지만, 그것조차 신용할 수 없는 상황

이번 올림픽은 재난 지역을 재건하는 주요 목적 중 하나였다.

 

 

 

 

Kas***********

どれだけ復興五輪等と虚勢を張ろうが事実は隠しきれない。この写真に喚き散らかす輩は原発区域内を1日かけて歩いて見ろよ。

아무리 부흥 올림픽 등과 허세를 부리든 사실은 숨길 수 없다.이 사진에 함성을 지르는 무리들은 원전 구역 안을 하루 걸쳐서 걸어보라구.

 

 

 

TOH********

年末とコロナ禍で、ほとんど報道されてないけど、一昨日、東電が今更だけど「すいません、ぜんぜん無理です。取り出し作業をやったら作業員は死んでしまいます」と言い始めてる。
放射線量を測ってたら「約20~40ペタベクレル(ペタは1千兆)」で、約1時間、人がいたら死ぬ線量だと初めて打ち明けた。연말과 코로나화로 거의 보도되지 않았지만, 그제, 도쿄전력이 새삼스럽게 [죄송합니다, 전혀 무리입니다.꺼내는 작업을 하면 작업자는 죽어 버립니다」라고 말하기 시작하고 있다.
방사선량을 측정하고 있으면 「약 20~40 페타베크렐(페타는 1천조)」로, 약 1시간, 사람이 있으면 죽는 선량이라고 처음으로 털어 놓았다.

 

JIM*******

安倍晋三氏が「状況はコントロールされている」と世界に嘘をついてオリパラを誘致しました
…そうそう,福島原発事故で発せられた #原子力非常事態宣言 は(10年以上が経過した今も)解除されてないにも拘らず!#東京五輪の中止を求めます #東京五輪スポンサー商品を不買します

아베 신조 씨가 '상황은 통제되고 있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해서 올리파라를 유치했습니다.
-맞아맞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발단된 #원자력 비상사태 선포 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해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도쿄올림픽의 중지를 요구합니다. #도쿄올림픽 스폰서상품 불매합니다

 

tho*******

原発で避難して辛い思いをした人たちを嘲り笑うように走るスポンサーの車両。これをバックアップしている組織委員会、更に組織委員会をバックアップしている政府。被災者の神経を逆撫でする、これがこの国の政府です。

원자력 발전소에서 피난해 고생한 사람들을 비웃듯이 달리는 스폰서의 차량. 이것을 백업 하고 있는 조직 위원회, 또한 조직 위원회를 백업 하고 있는 정부.이재민의 신경을 건드리는, 이것이 이 나라의 정부입니다.

 

Api*****

お願いです。 復興五輪には心から賛同できません。 原発にも反対です。でも、
五輪で世界に発信するべきは、反原発ではなく 復興した・しようと頑張っている東北の姿です。そこは、絶対に混同しないでいただきたいです。

제발요. 부흥 올림픽에는 진심으로 찬동할 수 없습니다. 원자력 발전소도 반대입니다. 하지만
올림픽에서 세계에 알려야 할 것은 반원전이 아니라 부흥했다·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토호쿠의 모습입니다. 거기는 절대 혼동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k*****

狂った国のオリンピック。ホントなら、それどころじゃないのにね。

미친 나라의 올림픽정말이라면 그럴 상황이 아닌데 말이야.

 

 

k******

原子力緊急事態宣言下の国で
オリンピックを開催するという愚行
東京電力福島第1原子力発電所で事故が起きた当日、日本政府は「原子力緊急事態宣言」を発令しました。安倍首相が「アンダーコントロール」などと発言した2013年、まだ日本は緊急事態宣言下にありました。

원자력 긴급사태 선언하의 국가에서 올림픽을 개최한다고 하는 어리석은 짓 도쿄 전력 후쿠시마 제 1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일어난

당일, 일본 정부는 '원자력 긴급 사태 선언'을 발령했습니다.아베 총리가 '언더 컨트롤' 등의 발언을 한 2013년, 아직 일본은 긴급 사태 선언하에 있었습니다.

 

それどころか、事故から10年たった2021年になっても、それは解除されていません。緊急事態宣言が発令されている国でオリンピックという「お祭り」を開くなど、冗談もいい加減にしてほしいと思います。

오히려 사고로부터 10년이 지난 2021년이 되어도 그것은 해제되고 있지 않습니다.비상사태가 선포된 나라에서 올림픽이라는 축제를 여는 등 농담도 적당히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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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에서도 이웃은 잘 만나야한다.

2021. 4. 4.

✎ maruko

maruko¦Bento Decorator ✍🏻서울출신 일본거주, 프리랜서 디자이너

일본생활에서도 이웃은 잘 만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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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글에서는 이야기되고있는 해당 "사건"에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가나자와의 긴 겨울이 끝났습니다. 화창했던 어제, 집을 나서며 남편에게 했던 이야기, "이번 겨울은 정말이지 너무나 길었던 것 같아" 라고, 

네, 개인적으로 이번 겨울은 지난 어느 겨울날 보다도 참으로 쌀쌀했고, 고독했고, 힘겨웠고, 또 한편으로는 보람됨을 느끼기까지 정말 만감이 교차하는 일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매일매일의 하루속에서 이 끝나지 않을것만같던 시간들의 지루함에 그래도 조금이나마 희망을 원하고 또 가져보며

"왜 나지?" "왜 내가 해야하는가" 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면서 정신적으로는 쇠약해지는 듯해도 내 몸은 어김없이 행동으로 움직이고있었고,

우리 부부는 마침내 새로 이전한 삶의 터전에 수십년동안 방치되었던 그 무언가를 바꾸는데에 성공했습니다. 4개월 남칫 매일매일 신경을 곤두세운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우리가 새롭게 이사온 곳은 동네 사람들의 수십년간의 무책임, 무관심, 고의적인 방관, 자신들이 편하게 살기위해 바꾸고싶지 않았던 지독한 이기심이 무섭게도 녹아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곳에 새로운 사람들이 올것이라는 계산 역시 그들에게는 불필요한 에너지였을겁니다. 옳고 그름과는 관계없이 "너희가 따라야해" 의 집단주의.ㄹ

 

몇일전 구독자분으로부터 "마루짱님의 소신과 철학이 궁금해집니다" 라는 질문을 받은 적 있습니다. 단지 눈에 띄는 도시락을 만들어 인터넷에 업로드 하고있는 결과물을 예쁘게 봐주시고 던지신 사소한 질문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 질문을 보고 한참을 생각하게되었습니다.

나의 오늘의 소신과 철학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리고 그것은 무엇일까, 라는 궁금증.

 

내가 이곳에서 경험한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며 모든 일본인이 "저렇다" 라는 것으로 인식하고싶진 않았습니다. 단지 이곳의 사람들이 그러한 것이고, 이전에 살던 동네의 사람들은 또한 이러하지 않았기애 내 눈앞에 보이는 그 모든것만으로 단번에 판단하고싶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최근 우리 부부의 삶의 터전 공간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해결하려 노력하며 , 여러 지역에 거주하는 일본인 친구들, 인생 선후배들 등과 연락을 취했습니다, 그곳상황은 어떤지 다른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는 어떤 해결책을 국가에서, 그리고 시에서 내세우고있는가, 각 시마다 어떤 방법으로 문제점을 해결해가고있는지 조사하기도.

시민들은 어떻게 행동하고있으며 좋은 결과와 나쁜결과, 그리고 찾을 수 있는 법률까지 찾아보며 우리부부는 참 많은 시간을 "이것"에 쏟았습니다. 1년전엔 상상도 못했을 오늘날의 사건.

 

가끔은 너무나 속상해 인스타의 스토리에도 참고참아왔던 마음을 살짝쿵 꺼내 보이기도, 위로받고싶어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도 한 그런 추운 계절이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따뜻한 봄이 올 무렵, 그러니까

그 일들이 모두 해결되고 우리에게도 평온이 찾아올 무렵에 서스름없이 이야기를 꺼내보기로 마음먹었고, 이제 그때가 온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겨울 내내 경험하게 되었던것은 우리가 자초한 것이었습니다. 그저 보여도 모르는척, 불편해도 욕먹지 않기위해 참으며 살아야하는 척, 해야했었나, 하지만 올바르지 못한것을 지나치지 못하는 나의 성격, 그리고 남편의 성격덕분에 몸에서 머리에서 곧바로 반응이 오게됩니다. 

그렇게 그 어떠한 문제점들을 올바르게 바꾸기 위한 노력. 그것들이 우리 삶의 터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때엔 그 성량은 최고치를 발휘하게 되겠지요. 일본 법률과도 위배되는 그 환경에 맞서.

 

 

타당하고 당연한 것인것을, 자신들에게 피해가 올것이 싫어 그룹적으로  조직적으로 움직였던 이기심의 태도, 은근한 따돌림, 

행여나 자신들에게 피해의 일부라도 돌아올까 몸사리며 해야할말도 굳이 하지않고 팔짱끼며 방관하던 그 자세, 눈빛, 표정, 말투, 행동 모두가 저의 머릿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잔상으로 남아버렸습니다. 본인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형태인데도말입니다.

 

이런일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가지 않았어도 됐을, 그리고 우리가 만나지 않았어도됐을 그 사람들, 그 장소들을 . 지금은 우리가 경험해서 참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게되었습니다.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 부부가 알게되는 정보의 영역은 움직이는 만큼 넓혀져만 갔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살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들에게 피드백을 받으며 우리는 우리가 처한 환경을 벗어나거나 도망가기는 커녕 고쳐 개선해나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수십년을 산 이 동네사람들이 "협력" 해주기를 자치회의 모임에서 몇번이고 강조했지요. 시청에는 개별적인 담당자가 생겨 지속적인 어드바이스, 시청으로부터 협력도 받게되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그냥 쉬쉬하며 자신들에게 맞춰줄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를 동네사람들은, 우리들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관찰하는 듯 싶어보였습니다. 가만히 당하고만 있진 않을거라는 기운은 은연중에 전해졌을거라 생각이 듭니다. 지금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을 해왔고, 그것을 방치하고 있는것인지, 우리 부부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닌, 국가에서의 경고라고 해도 좋을 정보들 역시 서류화 해두었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들에 대한 현재까지의 상황, 개선해가야할것들. 그리고 개선해야하는 이유, 피해상황. 사진자료 그 모든것들을 서류화하여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거나, 하나하나 세세하게 짚고넘어가지 않으면 , 교묘하게 피해가는 수법을 쓰려는 동네 사람들의 무책임함을 두배 세배로 감당해야했으니까요.

 

"새로 이사온 주제에 시끄럽다" "외국인 여자가 말이 많다"(대부분 여자들은 조용하고 남자들이 이끌어가는 사상이 강함) 그리고 그 이상의

외국인으로써 듣기 거북한 인종차별 발언까지.

삼십수년을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살다 요 몇년 사이 가나자와로 이주한 제가 듣기엔 참으로 올드하기 짝이없어 신박하기까지한 고리타분한 시골 욕덩어리 같이 느껴졌습니다. 아직까지도 여자라면 입다물고 살아야하는 그런 개념속에 살고있고있다 라는것은 매일매일 보고 듣는 이야기와 사람들의 모습들에서 충분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야기하고싶었습니다. 

 "네들이 남자든 여자든 내겐 상관없어 당신들의 무책임이 켜켜이 쌓여 지금 어떤결과를 낳았는지, 새로 이곳에 삶의 터전을 이루기위해 온 많은 세대주들에게 어떤 피해를 주고있는지, 앞으로 어떻게해야하는지, 너희가 모른다면 내가 알려줄게." 라는 심보로 시작되었으나,

무척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작성된 서류 등을 만들고 준비하여 수차례 표현하고 공고하였습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늘 함께 움직이고 함께 의견을 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불평불만을 내세울뿐, 누가봐도 헛웃음만 나올만한 변명과 핑계등을 앞세우며 자기몸사리고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그 모습을 눈앞에서 본다는것이 참으로 참담한것.

 

본인들이 벌려놓은 것에 대해 그누구도 해결하고자하는 의지도, 문제점을 알면서도 인식하고싶지 않은척,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멍청하고도 어리석고 민도가 낮음을 느끼게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다시한번 듣게 되는 말은

"이사온 사람들이 참 말이 많다" 그리고 그 발언들과 사상들로 보여지는 태도들은 새로 이사온 국제 부부들을 참으로 열받게 만들었고 더더욱 단합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이야기하자면, 가장 문제가 되었던것은 결국엔 4개월정도가 지난 지금의 시점, 해결이되었고, 그들역시 우리들의 이야기에 따를 수 밖에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본인들이 무시하고 방치해왔던 시간들에 벌이라도 받듯, 앞으로는 그들이 움직일 수밖에없게되었습니다.

마침내 따뜻한 봄이 찾아온 것 같았습니다.  물론 이 일을 해결하기까지 우리를 도와줬던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들역시 단번에 우리를 쉽게 도우려했던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존에 살고있던 곳의 사람들의 조직속에서 우리를 돕는다는건 그 누군가들에게는 눈에 띄는 행동이었을지 모릅니다.

 

일본인들의 속도에 , 그리고 성향에 맞축기 참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일본인 남편은 늘 저에게 이야기했죠. "마루짱, 이럴때엔 이렇게 하는게 좋아. 좀더 기다려보자."  한국이라면 다이렉트로 문제점을 전달하고 해결하려고 할수 있었던 것이, 이곳에선 몇사람 입에 거쳐 전달되어 그사람이 해결해줄때까지 기다려야했습니다. 그래. 일본이니까 그래야지.

 

개인과 개인이 직접적으로 불만을 전달하는 것은 금물과 같은것. 동네 자치회, 반장, 회장을 통해 먼저 전달해야하기애, 어떤 일로인해 기분이 오지게 다운되거나 지금 바로 처리하지않으면 곤란할 상황 역시 우린 윗사람에게 이야기하고 기다려야합니다.  이것은 일본은 사회적으로도 가지고있는 형상이기애, 이부분은 도무지 익숙해지기 어려운 부분이었어요. 가끔 이런경우를 맞이했을때 자주 중얼거립니다. 

"또야? 빌어먹을."

 

그 수많은 서류를 봐도 자신들이 올바르게 해온일은 단 1도없었던것을 부정할 수 없었던 이곳 기존의 주민들은 시청의 피드백을 토대로 계획된 앞으로 개선해야할 사항을 기준으로 총대를 들고 문제점과 의견을 내밀었던 우리 부부가 제시하는 방향에 따르는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전체 에어리어에도 공지되었습니다. "XX에서 XXXXXXX를 시작하게되었다."

 

이 일이 해결되기까지의 4개월 넘는 시간들동안 나는 왜 혼자서 이 많은 서류들을 만들어야하는가. 왜 나혼자 이렇게 고민을 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하는가에대한 불평불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속상했고, 때론 심리적인 압박감으로 눈물이 흐르기도 했습니다.

 

그래. 해결할 수 있는건 우리뿐이야, 너무나 답답하고 참담한 심정이지만

곁에서 이성적으로  "지금 확 바뀌진 않지만, 하루하루 천천히 해결책을 제시해보자. 너무 오늘 당장 바꾸려고 욕심 부리지말자. 그럴수록 너만 더 힘들어져" 라며 저를 리드해준 남편 덕분에저도 성질 죽이고 그나마 조금이라도 이곳의 스피드에 맞춰 릴렉스 하는 척이라도 할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올해부터 에어리어 회장과 동네 반장은 바뀌지만, 이전 회장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한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이 긴시간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일이 해결될 수 있었던것은 XXXX부부(남편 이름대며)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라고.

일이 해결될 수 있도록 도와죽기는 커녕, 오히려 방해를 놓고 누구보다 적극적이지 않았던 회장에게 듣는 이야기라 딱히 기쁘지 않았습니다. 앞에서는 인심 좋게 웃으면서도 뒤돌아서면 거짓말을하고 이간질하는 그와 그 누구들을 알고있기애. 내가 할 수 있는것은 나또한 당신에게 인심좋게 한번 웃어버리는것. 그게 외국인 거주자로써 최대한의 매너였습니다.

 

그렇게 또한번 저는 제 인생의 소신, 그리고 철학에 영양분의 살이 덧붙여집니다. 

경험이라는것도 참 중요하지만, 그것에서 느끼는 기분, 또 그 기분을 분해시킬줄 알아야하는 영리함, 더 현명하게 대처해야하는 방법.

참으로 다양한 성분들과 그것이 사용된 결과물로 나의 오늘의 소신, 또는 철학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든든합니다. 그렇게 우리를 도와주는 시청의 담당자가 생겨났고, 어느정도 일이 해결된 이 상황에도 앞으로지속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 관계와 길의 끈을 만들어온 시간들에 그리고 우리의 노력에, ¥한치의 의심도 갖지 않아주었던 사람들에게 깊이 감사할 따름.

또한 우리와 같은 환경에 놓인 사람들이 곤란에 처할경우 여러가지를 제시하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력을 갖추게 된 것 같아

그점은 무척 만족스럽습니다. 

 

⠀⠀⠀⠀⠀ ⠀⠀⠀⠀⠀⠀⠀⠀⠀⠀⠀⠀ ⠀⠀⠀⠀⠀⠀⠀

 

일본 생활에서는 한국보다 좀더 대인관계에서 많은것을 바라지 않는것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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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칠라 키우기 - 모리와 함께하는 시간들

2021. 2. 19.

✎ maruko

maruko¦Bento Decorator ✍🏻서울출신 일본거주, 프리랜서 디자이너

친칠라 키우기 - 모리와 함께하는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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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가나자와 쿠라시중인 마루짱입니다. 몇일전부터 인스타를 통해서 살짝쿵 소식을 알려드렸던 우리집의 새로운 가족이 된 "모리"

모리 일본어 "森(もり)” <발음/모리> 의 의미로 발음 그대로 붙여 짓게 된 새 가족이된 친칠라의 이름이예요.

 

초등학교 3학년때 외할머니께선, 막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요크셔테리어 2마리를 각각 몇개월의 차이를 두고 데려와주셨었죠. 어릴때라 입에 털이 들어가도, 집안 가득 강아지 향기가 물들어도 그런것들은 신경쓰지않는 동물을 좋아하게되고 교감을 할 수 있었던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자녀들이 어릴때에 집에 강아지, 병아리등 반려동물을 키우도록 하면 자녀들의 감성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알고있어요. 여러가지 국내외 논문 결과에서도 알수 있듯이, 인간에게 사회성및 행복감을 준다고도 알려져있죠.

 

우리집 요크셔테리어는 한마리는 14년을, 그리고 다른 한마리는 15년의 삶을 끝으로 우리 가족들과 영원히 작별을 고해야했어요.

그 십수년이라는 시간속에서 저는 초,중,고,대학을 졸업하고 그 힘들었던 중학생시절 IMF 시절의 직격탄을 맞았을때에도, 가족과 다같이 동해바다로 놀러갔을때에도 아이들은 언제나 우리집과 함께였습니다.

나이가 먹을수록 아이들을 처음 데려왔던 넉넉했던 환경에서처럼 쭈욱 꾸준히 살피진 못했지만, 저의 하루인사와 하루끝의 인사를 받아주는 두마리의 강아지들은 지금 생각해보면 늘 그 자리에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회생활로 힘들어서, 연예가 잘 안풀려서 여러가지 이유등으로 변해왔던건 단지 제자신일 뿐이라는것... 조금 작은 공간에서라도 그 아이들의 마지막 숨까지 듣고 잘 떠나보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떠나던 둘째와 한공간에 함께 누워 그 아이가 쉬는 마지막숨결을 느끼고, 바로 꼭 껴 안아주었습니다. 그날 그 순간. 집에있었던 온전히 저와 그 아이 . 생계유지형 가족이었던 저희 가족들은 오랜만에 그날 밤 집에 모여 상자 안에 강아지를 잘 감싸고, 저녁늦게 저와 할머니 둘이서만 삽을 들고 뒷산에 저녁늦게 뭍으러 갔던것이 생각나네요.

정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 기억을 끝으로 저는 강아지를 만져본 기억이 없고, 보더라도 그저 바라만보고 "예쁘네..." 하며 지금까지 살아왔어요. 

 

어린시절 처음만난 생명체와, 그 생명의 인생의 끝을 함께한 마음은 아마 동물을 키워보시고, 먼저 무지개 다리를 건너보내셨던 분들이시라면 공감하실겁니다. 물론 그런 이후에도 다른 애완견이나 고양이를 계속해서 키우시며 사랑을 주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왜인지 그이후로는 더 동물을 멀리했던 것 같아요. 

 

때문에 이번 친칠라를 키우게된 그 시작은 정말 결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답니다. 약 반년여간 이상 계속해서 직접 가게에 보러가고 용품에는 어떤 물건들이 있고, 뭐가 필요한지. 친칠라의 특성에대해서 정보가 많은편인 일본에서 자료를 뒤져가며 귀여움을 떠나 제가 키울 수 있는걸까, 우리집의 조건은 괜찮은걸까. 우리부부 아니, 나의 환경 패턴과 잘 맞지 않는 부분은 어떤것일까. 등등..... 

 

일본에서 친칠라 키우기가 무척 붐이 되어있고, 사실 외국에서도 친칠라 키우는 집사분들을 굉장히 많이 볼 수 있었는데요. 덕분에 멸종 위기였던 친칠라가 멸종위기에서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어요. 그만큼 일본의 에니메이션 피카츄의 모티브가 된 동물인 요녀석이

마냥 귀여워서 , 손에 들고 사진찍고 싶어서. 간식 주면 그 작은 손으로 먹는걸 남에게 보여주고싶어서 다소 편파적인 이유들로 혹, 나는 결정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다시한번 생각하고 계속해서 저를 의심하고 , 준비가 된 사람인지 고민하고 그렇게 반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습니다. 

 

강아지를 키워봤으니 강아지 키우는건 쉬워! 라고 감히 말할수 없었습니다. 사람에게 친근하고 애교많고 외로움도 잘 느끼는 강아지여서 더 원할지언정 강아지에대해서 더 잘 아는 저이기때문에 강아지를 어떻게 키워야하는지 더 꼼꼼하게 챙겨야할 부분이 많게 느껴집니다. 모든 동물들이 그러할것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체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문제에대해서는 단지 쉽게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예요. 

 

모리야~

"내 이름은 모리예요"


2020년 4월 1일생 여자아이. 태어난지 이제 곧 1년이 되는 모리예요. 

 

정말 많은 이름을 고민했어요. 남편은 한국이름을 짓자고 여러가지 자신이 아는 단어들을 나열해보았지만, 뭔가 가볍거나 우스꽝 스러운 단어들을 이야기해서 머뭇머뭇했거든요. "애착이있는 단어로 짓자!" 라며 자꾸 내세우던 "아이고" 라는 단어.

 

일본인인 자신이 듣기에는 아이고 라는 발음이 굉장히 귀엽다고. 그래도 남편은 아이고라는 단어가 한국에서 본래 어느때에 쓰이고 있었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한국어를 공부하는 일본인들이 대체적으로 "아이고" 라는 표현을 빠르게 습득해온걸 봐온 저의 경험으로 그 뜻의 의미나 무게감따위같은 감정적인것들을 배제하고 아마도 귀여운 발음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저도 잘 알죠.

 

본래 한탄할일이나 누군가가 돌아가셨을때에, 울부짓으며 "아이고..아이고..." 마음이 아픈 감정에서 사용되었던 그 단어와 표현의 무게감에대해서 남편에게 다시한번 잘 설명한 뒤, 결국 예명이었던 아이고는 사라지게되었습니다.

 

최근 몇달간 우울증이 와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던 제가 남편과 기분전환을 하러 바다나 산을 보러 다녀오면서 수많은 새소리도 듣고, 새로운 가족이 된 탐론렌즈를 덥썩 들고나가 바람소리, 물소리들에 둘러쌓여 사진도 찍고 조금은 내 마음을 놓아두는 시간들을 보내며 참 산이라는곳에 더더욱 매료되어 집에서 설거지를 하다가도 생각나는것은 바로 산이 숲들이었어요.

 

모리는 꽤 예민한 친구인데요, 모리도 나도 . 조금더 마음을 열고 서로에게 의지할수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푸르고 울창한 숲같이 자라나렴 이라는 생각에 이름을 "모리!" 라고 결정하게되었습니다. ☺️

 

 

 

 

 

"모리와의 만남"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펫몰이 있는데요, 워낙 큼직큼직한 센터가 많지만, 그중에서 두곳이 친칠라를 유일하게 많이 접할 수 있는 곳이었어요. 거의 주말마다 저희는 계속해서 친칠라를 보러 갔어요. 키우고싶은 마음이 일시적인 것은 아닐지 계속해서 제 자신을 의심했거든요. 

그렇게 반년이 넘는 시간. 몇주동안 봐오던 귀여운 녀석도 어느샌가 새 주인을 찾아가 빈자리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모습을 보기도 했었고

늘 꾸준히 그곳에 있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또 한곳의 센터에서는 꽤 빠른 패턴으로 보이던 친구들이 안보이기 시작하거나 이유는 알수없지만 케이지가 바뀌어있기도했어요. 

 

친칠라는 태어난지 생후 3개월 정도에 데리고 오는것이 가장 좋다는 이야기가 있어요(일본에서) 사실 가장 금액이 나가는 친칠라는 보드라운 바이올렛 털을 가진 친구인데. 바이올렛에 태어난지 몇개월 안된 좀 작은 새끼 친칠라가 있었는데요. 대부분 일본에서 친칠라는 3만엔부터 8만엔대 정도로 금액이 결정됩니다. (금액이 결정된다는 표현이 좀 그렇네요...) 바이올렛계는 대부분 8만엔대이며 제가 본 친구도 88,000엔정도였어요. 아마도 여러가지 용품을 모두 사게되면 10만엔은 거뜬히 넘어가는 금액이 될거예요. 그리고 암컷이 수컷보다 크게 자라는 특징을 가지고있습니다. 

 

일단 저희는 금액이나 성별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금액이 크고 , 또 작고의 차이는 저와는 아무상관이 없었거든요. 여러가지 저의 판단과 의견으로 암컷인 모리를 데리고왔어요. 제가 회색빛의 모리를 결정한 데에는 예전에 처음으로 친칠라를 처음 도쿄에있는 동물 카페에서 만났던 같은계의 녀석을 만지고 눈으로 봤던 첫 경험의 충격과 행복함이 컸었던 것 같습니다.⠀⠀⠀⠀⠀⠀⠀ ⠀⠀⠀⠀⠀⠀⠀

 

도쿄 하라주쿠 동물카페 harry에서

네, 도쿄에있는 카페에서 귀여운 친칠라 아이들을 보고 만지고 밥주고 보드라운 털을 처음 경험했을때에, 정말 어른답게 조용히 잘 따르고 가만~히 앉아 조금을 낯을 가리는듯한 이 아이가 , 바로 모리와 꼭 닮았어요. 사실 닮은 것 같아서 이 동물카페에있던 아이를 생각하며 모리를 데려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저는 그 많은 친칠라의 색깔중에서 유독 이 회색빛깔에 매력을 느꼈어요. 

 

도쿄 친칠라 카페 다녀온 포스팅 보기

marukokurashi.com/125

 

도쿄 하라주쿠의 동물카페 harry 에 친칠라를 만나러 다녀왔어요.

본 게시물은 2018. 11. 29. 9:09 에 네이X블로그에서 최초 작성된 글을 옮겨온 포스팅입니다. 본문 내용은 게시글은 현재인 2020년이 아닌 기준으로 내용 이해에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동물을

marukokurashi.com

 

 

모리는 그렇게 2021년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에 우리집으로 와 가족이 되어주었습니다. 직원이 용품을 하나하나 골라주시면서 설명을 덧붙여주시고, 케이지, 간식, 주 식재료인 건초, 등등 필요한 물건들을 함께 구매해와 조립하고 처음엔 1층 거실에 자리를 마련했지만, 우리집의 상황, 시간에 따른 집 내/외부의 소음 패턴. 다양하게 파악하고 2층의 남편 서재 한켠으로 자리를 옮겼어요.

 

유~독 낯을 가린다고 직원분께도 여러번 이야기를 들은 예민보스 모리짱이지만. 앞으로 2주동안은 되도록이면 접촉을 하지않고 가까이 지내는 시간들을 보내보려고해요. 꼼꼼히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서도 모리의 소식을 전할게요.

 

다음 모리의 포스팅에서는 구매한 용품들및, 친칠라 키우기 주의점과 특징 등 알려진 친칠라 키우기에 절대적 룰과 같은 오늘 포스팅에 담지 못한 친칠라에 대한 이야기를 더 담아내어보고싶습니다 .  앞으로 제가 주의하고 지켜야할 점들 말이예요 ☺️

저는 대부분 친칠라 사육이 발달된 이곳 일본에서서 알려진 서적, 인터넷 정보, 그리고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본의 친칠라 계정들을 참고하고있습니다. 

 

그럼 또!

 

 

새로 업데이트된 모리의 영상도 체크해주세용 

www.youtube.com/watch?v=BRiVIaclB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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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소고기 맛집 "도마", 우리가 처음 데이트한곳,

2021. 1. 21.

✎ maruko

maruko¦Bento Decorator ✍🏻서울출신 일본거주, 프리랜서 디자이너

홍대 소고기 맛집 "도마", 우리가 처음 데이트한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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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의 최초 게시일은 2018. 9. 7. 12:16입니다. 내용이해에 참고하세요.

 

 

오전 아침부터 일찍 움직여, 한국여자와 일본남자의 정식 혼인신고를 종로구청에서 마치고, 조금 늦은 점심은 우리가 처음 데이트 했었던 홍대"도마" 에서 오랜만에 추억을 떠올릴겸 밥을 먹자고 결정했어요. 처음 남편과 이곳에 왔었을때는 정말 둘다 서먹서먹함을 가리기위해 밝고 쾌할하게 식사하던, 오글거리던 둘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자나갑니다 .... 후후후.

남편이 첫 데이트 장소를 고르던중, 자신이 소개하고싶은 곳이있다며 선택한 공간이 바로 홍대의 소고기 전문점 "도마" 였어요. 허나 마루짱은 이미 알고있는 집이기도했고요 (웃음) 20대 초반부터 저의 인생추억이 모두 담긴 홍대에서, 도마라는 가게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고기집이였고, 홍대에서 장사하던 시절에도 많은 사장님들이 이곳에서 직원 회식을 거하게 하시기도 하셨기애 저에게는 낯설지 않은 가게였습니다. 

최근 홍대상권이 이대, 신촌에 이어 많이 죽고 많이 변하고, 개성있던 시절의 홍대는 흔적도없이 사라진 상태이기때문에, 과거의 홍대가 개인적으로 많이 그립기도해요. 온통 돈에 눈먼 자들이 상업동네로 일꾸어내고있는 더이상 가고싶지 않은 홍대에서,
오랜 기간동안 꾸준히 그 역사를 지키며 신선하고 맛있는 소고기로 적적하게 계속해서 오늘날의 추억을 만들어내고있는 "도마" 라는 공간은, 마루짱에게도 많은 추억이있는 소고기 고기집이예요. 문을 들어서는순간, 옷장사하던 과거로 돌아가는 경험을 하곤하죠.

그런 저에게 대단한 공간을, 남편씨가 나름 신경써서 골랐다는 첫 데이트 식당이였다니, 역시 보는 안목이~ GOOD! ㅋㅋㅋㅋㅋ)

 

 

 

저희는 예전에 오후6시 넘어서 갔었어요. 그때는 이번에 들어갔던 입구 말고, 건물 좌측으로 돌아서 가면 나오는 신세계공간에서 먹었었거든요. 더 넓은 홀이 있는데, 이번에는 낮에가서 그런지 일부만 열어두신 느낌이었어요.

 

건물 바로 메인 입구로 들어가면 나오는 홀에서 식사를 했답니다. 간간하게 런치 메뉴로 끼니를 떼우는 많은 분들을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저희가 앉고 나서부터는, 외국인들이 슴슴하게 방문하여 런치가 아닌 저희처럼 정식 구이를 많이 시키시더라구요.(웃음)

 

홍대 최고의 소갈비살 전문점이라는 문구, 인정 합니다.

 

이쪽 메인 홀로는 처음 들어와봤어요. 입구 바로 앞에 자리잡아서 메뉴를 살피며 뭐를 먹을까.. 고민하다가. 역시나 우리가 처음 만났을때 주문했던 세트와 고기를 똑같이 주문하기로했어요. 그런데 사실, 여긴 고기가 다 맛있어서 세트고 단품이고 그냥 하나씩 솔직히 다 먹어봐야해요. (또르르...) 또한 이곳의 먀악 된장찌개는 그 어느곳에서도 맛볼수없는, 뚝배기 싹싹 긁어 설겆이를 하고 나오게되는 그런 된장찌개입니다.

메뉴는 비교적 심플 합니다. 소고기 전문점이니 잡다한 것들 팔고있지않지요.

 

묻고 따지지않고, 저희는 도마모듬 B세트 2개를 먼저 주문했어요.(갈비살은 양념으로 선택!) 아마도 예전에 우리가 처음 이곳에서 데이트 했을때에도, 세트를 총 2인분 주문한뒤 단품을 더 추가해서 부족함을 달랬던 것 같아요^_^♡ 명절 당일 제외하고는 매일 AM11:30 - AM05:00 운영하고 계시는 정말 수고 많으신 소고기집 도마.


또 그땐 둘이 얼마나 술을 잘 마시는 술꾼들이었던지,,, 아마 술값이 더 나왓었을 것 같아요. 남편은 맥주파, 저는 소주파 로 고기값만큼 술값이 나오지 않았었나 싶어요. 여기는 정말 술이 안들어갈 수 없는곳 ♡ 술꾼들이 계산하고 정신놓고 나올정도로 맛있고 분위기도 사람사는 분위기 나는, 외국 친구들이 오면 꼭 한번 데려가봐야할 곳으로 완벽 추천입니다. 


도마모듬 B세트에는 조금식 다양한 부위를 골라서 먹을 수 있는 적당한 양이 준비된 세트예요. 2천원 차이이니 , 저는 도마 모듬 B세트를 드셔보시라고 추천드리고싶어요. 도마모듬 B세트는 (23,000원) 꽃살+와규등심+갈비살(생or양념중 택1)=150g 입니다.


150g 이라고 적게 생각하시면 오산이세요. 도마는 미친듯이 많은 양으로 배부르게 먹는 식당은 아닙니다. 소고기 전문점이니 당연히 신선한 고기를 내오는만큼 뷔페처럼 먹는 퀄리티일리가 없죠. 둘이서 300g양으로 마약 된장찌게 하나 똿- 시켜두고, 밥도 한공기정도 시키고, 냉면도 취향에 따라 시키셔도 OK!  

 

이곳의 매력만점인 와사비와 허브소금에 조금씩 찍어먹고 반찬으로 나오는 양념게장과 이곳만의 특별한 달큰한 호박반찬, 절묘하게 양념과 섞인 파무침 등등..... 충분히 배부르게 드실 수 있는 집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뭐, 백날 말해도 드셔본분들만 아실겁니다.

 

모든 B세트에서 절반가량을 먹고 접시에 남아있는 양념된 갈비살, 진짜 가위로 자르는데 가위 닿기도 전에 저절로 녹아내려 잘리는듯한

정말 초 부드러움 절정의 고기. 그냥 자르지 말고 한개씩 입에 넣어버리고싶은데, 애껴먹느라고 조그맣게 잘라 먹었어요.

 

 

 

이게 바로 위에 B세트에 함께 나오는 두덩이의 꽃살 입니다. 꽃살? 갈비본살? 조금 헷갈리지만, 가위로 잘리는데, 가위에 닿자마자 고기가 녹듯이 잘리더라구요.

 

 

 

 

그리고 초반에 함께 나오는 송이버섯 덩어리 1개, 예전에는 안먹었던거같은데,(내가 기억이없는건가?) 이건 어떻게 먹는건지 당췌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언니께 여쭤보니, 여기저기 잘 굴리며 한부위 10분씩 구워서 말랑말랑해지면 호일을 벗겨서 마져 구우며 먹는거드만요. 저희가 워낙 버섯을 좋아해서 , 계속 기다리다가 그냥 호일 벗겨서 바로 잘라서 구워먹었습니다. 어떻게 먹든 다 맛있는 버섯 ♡

 

자, 오늘 아침부터 수고했으니 한좐해! 쫜~♡(혼인신고날)

 

 

 

 

자, 역시나 이집에서는 세트만으로 끝낼수가 없어요. 그럴 용기가 없어요. 단품 하나 더 가자! 라고 하며 (남편상은 1인 1개씩 주문하자 라고 했지만 마루짱은 일단 하나 먹어보고 주문하자!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주문한 호주와규등심 단품 27,000원


이건 정말 피자먹듯이 1인 1개씩 주문해서 피자한조각 입에 넣듯이 먹어야해! 라고 말하는 나에게 히로시상은 "마루짱, 고기가 많이 먹고싶었구나" 라고 답변했어요 (웃음) 네 , 그럼요. 고기를 워낙안먹으니 한번 먹을때 맘껏 먹어야죠.

 

 

불 위에 올라간 이기적인 자태 ♡ 정말 뱃속에 여유가 되신다면, 단품들도 하나씩 주문해보시라고 추천드리고싶어요. 저희가 이걸 주문한 이유가 남편이 처음 이집에 와서 이 고기를 잊지못하고 메뉴 이름은 모르고, 형태만 기억하고 있었기떄문입니다.
그래서 직원언니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요녀석이 바로 와규등심 메뉴 라는것을 알수 있었죠.

 

 

아, 그리고 국물까지 모두 마셔버렸던, 도마의 "마약된장찌개", 이곳은 된장 찌개가 나오면 정말 굿 쎈스로 구이판 위에다가 살포시 얹어주세요. 그러니 계속해서 따끈따근하게 먹을 수가 있는거거든요. 마루짱은 이런 센스가 너무 좋아요. 다른데는 뚝배기 손상된다, 불판 손상된다, 타니까 내려놔라, 설겆이 하기 어렵다, 라는 다소 고객입장에서 기분이 상할 수 있는 말을 꽤 하면서 뜨거운곳에 뚝배기 올려놓는것 제제하는 곳이 있어요.


그러다보니, 도마에서 직원분이 이렇게 찌개를 올려주시는건, 정말 고객입장에서는 알게모르게 감동을 먹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국물이 좀 줄어서 짜게되면, 물좀 넣고 더 끓이세요. 그럼 되요 .(웃음) 전 이럴때 굽던 고기 한두어점 더 넣어줍니다. 좀더 함께 우러나라구요.

 

별도로 구매도 가능한 홍대 소고기 전문점 도마의 허브소금과 와사비,

그리고 도마에서는 현장에서 고기와 함께 먹을 수 있는 부수적인 조미료들로 배치해둔 마력의 맛"허브소금"을 별도로 판매하고 있어요. 1병에 7천원, 그리고 2병에는 단돈 1만원에 구매할 수 있답니다. 남편은 허브소금에 찍어먹는게 제일 맛있다고 하더라구요.
집에 사가지고 가서 삼겹살 먹을때, 생선 먹을때, 볶음밥 먹을때 등등 다양한 곳에 함께 첨가해서 먹어도 정말 색다르고 감칠맛 나는 맛이 될거라고 찬양하면서 이날 허브소금 엄청 먹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정말 기특한 녀석, 은은하게 달달한 맛이 나는 도마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이 와사비는요. 그냥 조금 맨입으로 먹어도 맵지않고 은은하게 올라오는 달달한 맛에 빠져들고 맙니다. 정말 고기에 얼마나 발라 먹었던지, 단맛이 나는와사비 소스, 상상이 가시나요?
그렇다고 질리도록 매운것도 아니에요. 정말 이건 드셔보셔야해요. 옆에 함께 진열된 레몬 소스도 남편이 푹 빠졌습니다.

 

 

다다음주 일본에 가서 돌아올때엔 남편의 어머님과 함께 돌아오게되어 어머님의 첫 한국여행이 이어지게되는데요,
이곳에 오는건 어떨까? 하고 의견을 모아보았답니다. 어머님 고기를 좋아하긴하시는데, 여기 고기먹고 입에 고기가 끼거나 하는일은 절대 없다고 만장일치로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 한국에서 제대로된 고기구이 한번 드셔보셔야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아참, 위에서 언급했던 홍대 도마에서 구매가능한 , 허브 소스 . 바로 이녀석입니다. 저희 2병 구매해서 10,000원에 구매했습니다.

일본 관광객분들 요런거 좋아하시는데, 아마 이걸로도 쏠쏠하게 매출 나오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담아주시는건 꼼보포차 비닐에 담아주신....웃음, 아마도 비닐이없어서 빌려오셨거나, 같은 사장님이시거나 둘중 하나시네요.^^)

 

낮에 오니 또 다른 분위기의 홍대 도마였습니다. 온몸 다 바쳐 , 주말에 시간되실때 꼭 다녀와보시라고 권해드리고싶지만,
포스팅만 보고 가시는 분들은 막상 잘 없지 않으실까 싶어요. 저 믿고 한번 다녀와보세요. 후회하지않으실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목각으로된 인테리어가 대부분인 곳을 참 좋아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 도마의 외관을 찍는것을 깜빡해서 함께 사진을 업데이트 하지 못했는데요, 도마 1층 건물 한채로 떡- 하니 있는 낮은 건물이다보니 외관에서 풍기는 신선한 이미지도 나름 매력적이구요. 이곳 좋아하시는 단골손님들이 꽤 많기때문에 , 그리고 언제나 변하지않는 사장님의 자부심있는 마인드, 그리고 그에 걸맞는 진정성있는 반찬들로 변함없이 고객들 곁에있으니, 이 매말라가는 홍대에서도 여전히 꽃을 피우고 계신건 아닐런지요.

 

 

 

 

 

홍대 최고의 소고기전문 고깃집 도마 SNS

www.facebook.com/domawalk/
www.instagram.com/doma_hongd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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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시어머니와 함께한 삼청동 커피방앗간,(feat.한국며느라기이야기)

2021. 1. 21.

✎ maruko

maruko¦Bento Decorator ✍🏻서울출신 일본거주, 프리랜서 디자이너

일본시어머니와 함께한 삼청동 커피방앗간,(feat.한국며느라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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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의 최초 작성일은 2018. 10. 31. 14:03입니다 내용 이해에 참고해주세요

이전 블로그에서 글을 옮겨오면서 이시절의 종로를 보고있노라니, 마스크없이 자유로웠던 그때가 참 그리워집니다.

 

 


 

"어머님과는 이곳에 꼭 가보고 싶었지, "
삼청동 커피방앗간

 

 

 

인기가 많은 곳은 어딜 가나 오픈 때 맞춰서 가거나, 그것보다 더 일찍 가서 줄을 서거나 하는 광경이 이제는 한국에서는 이상한 광경이 아닌데요, 삼청동 커피방앗간은 테이블에 앉기가 정말 복불복일 정도로, 늘 사람들로 붐비는 삼청동의 인기 핫 플레이스 중 하나죠,. 수년 전, 푹푹 찌던 무더웠던 여름날, 겨우겨우 가게 내부의 Bar테이블에 일본인 친구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시원한 "커피빙수"를 먹었던 것이 생각났어요. 그때가 아마도 커피방앗간의 마지막 방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 이후로는 단나인 남편과 함께 그 앞만 보고 오거나 , 이 커피방앗간의 오른쪽에 뚫린 아주 좁고 긴 감성적인 길을 가기 위해 지나가는 통로로써 산책을 할 때에만 오며 가며 했던 것 같아요. 보는 것만으로도 정겨운 커피방앗간의 인테리어도 아주 좋잖아요. 

어머님이 얼마 전 한국에 "생애 첫 해외여행이자 한국 여행"을 오시게 되시면서, 저는 자연스럽게 제가 당당하고 자신 있게 소개해드릴 수 있는 종로 코스를 머릿속에 새기기 시작했어요. 눈감고도 걸어 다닐 수 있는 저에게 종로란 공간은 꽤 의미가 깊죠.
그중에 결정되었던 코스는 바로 
"삼청동 커피방앗간"

 

 

 

아직은 아리송 다리 송한
일본 시어머님과의 우리 사이

 

 

한일 커플일 때에는 그 어떤 무거운 의미를 두지 않고도 편하게 어머님을 만나 뵙고 그랬던 것 같아요. 일본에서는 중요한 관계가 아닌 경우에도 부모님을 만나는 세대들이 많기 때문에 저 또한 이런 것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서 별도의 감정을 챙기기 바빴죠.

그래도 남편은 결혼을 전제로 저를 만나고 있었고, 저와의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던 다소 고지식한 성향을 가진 일본인 남편이었기 때문에, 매번 아버님의 묘에 가서 가족끼리 다 같이 제사를 지내는 행사라던가, 명절마다 본가에 찾아가 어머님의 친구분들을 만나거나, 가족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굉장히 많았어요. 

지난번 포스팅을 보신 분들께서는 아시겠지만, 어린 시절 저희 집안이 겪었던 고난이라고 할 수 있는 시절 때부터 친지들과 연락이 닿지 않거나,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면서 마루짱네 가족이라 함은 외할머니네 가족과 엄마, 그리고 친오빠 이렇게 단출하게 살아가기 바빴습니다.

 

유년시절에는 정말 유복하게 지내면서 다소 남들이 겪지 않는 것들도 겪으며 나름 신나게 살아왔던 것 같은데, 어린 시절 조금이나마 그런 기억이 남아있는 것은 저에게는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 이후에는 충분히 인생의 쓴맛을 보며 자수성가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이런저런 인생을 겪어봐 온 경험으로 제 이외의 주변 사람들을 막대하거나 이기적인 성격으로 자랄 수가 없었거든요.

 

 

 

아무튼 시댁 쪽 가족들은 저희 가족들보다 인원도 많았고, 시끌벅적한 어머님들의 친구분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도 즐겁고, 많은 인원의 "가족"이라는 느낌이 초반에는 조금 낯설고,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마음이었지만, 천천히 제 마음도 열리고, 다가가게 되고, 감사함과 제 또 다른 가족을 느끼게 되었다랄까요.

사회생활에서는 얼굴도 넓은 생활로 인간관계가 참 수월했었어도 (일본에서는 얼굴이 넓다고 표현하죠/웃음/) 가족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저도 모르게 그 어떤 트라우마를 늘 가지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누군가에게 신용받을 수 있다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 엄청난 칭찬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죠. "일본인 시어머니는 어떤 분이야?" "일본 여자들은 어떤 성격인지 참 궁금해" "잘해주셔?" 기타 등등등....

저도 워낙 일본 지인들을 오랜 시간 동안 만나 오면서, 그것이 친한 신유의 관계든 비즈니스의 관계든 뭐든 간에 항상 친절하고 겸손한 사람들만 있을 줄 알았던 "일본 사람"의 성격에 여러 가지 타격도 입어보고, 앞에서 친절한만큼 뒤에서는 상상도 못 할 끔찍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도 일상 다반사라는 것을 겪고 난 뒤에 ,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인간관계에 대해서 조금 욕심을 내려놓았었어요.

모두에게 사랑받아야지, 모두가 나를 좋아하도록 해야지 라는 어리석은 의무감이 머릿속에 가득했던 20대의 시절이 지나고, 좀 더 가까운 내 사람들이 하나둘씩 결정지어지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보다는 정리된 인간관계 안에서 적절하게 섞여 살아가는 저의 모습이 되기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죠. 

여하튼 확실한 것은 어머님은 말도 적으시고, 무어가를 보- 하게 계속 쳐다보시고 계실 때에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 가끔은 궁금해지지만, 제 눈에 보이는 어머님의 모습 자체를 사랑해 보기로 했어요. 저 사람은 어떤 지난 인생을 살아왔을까... 아버님 앞에 여자로서는 어떤 여성이었을까..... 때론 궁금해지기도 해요.

많이 만날 일도 없고, 소통을 남편만큼 할 양은 안되어서 좀 더 자주 적극적으로 연락드리고 만나도록 노력해야 하겠다는 것이 지금 저의 마음이에요. 내년에 명절 때는 잡채 재료를 직접 가지고 가볼까 생각 중이에요. 제가 만든 잡채, 남편도 어머님도 꽤 좋아하셔서요.
작년에는 완성된 음식을 가져갔었는데 이번에는 넉넉히 만들어 드실 수 있도록 가져가야겠어요.

 

 

제가 무언가를 해드렸을 때, 한국사람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제스처나 반은 같은 행동을 기대하고 혼자 시무룩해지면 그건 바보잖아요. (웃음)

어머님은 남편 보다도 더, 정말 그 옛날 일본 분이시고, 어느 부분이던 조금은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계실지도 모른다고요. 한국사람들처럼 자심의 감정을 곧바로 표현하지 않는 분이시고요.

말씀이 적은 사람들을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해요. 제가 더 붙임성 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웃음)
인간관계 다 똑같습니다. 어머님이 저의 성격을 조금 초반에는 거부감이 있으셨을 수도 있었고 , 말이 많거나, 너무 웃는 거 아닌가 라는 헤픈 아이로 봐오셨을지 저는 알 수 없지만은요.


확실하게 지금 오늘날 어머님께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은 딱 하나예요.


"엄마는 (어머님) 마루짱을 참 믿어 널 믿지 않는다면 한국에도 오지 않았어. 너희 둘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보니까 더더욱 신뢰가 가서 안심이야. 마루짱은 꽤 씩씩하고, 마음에 있는 말을 거짓 없이 솔직하게 다 이야기하니까 더더욱 신용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시어머님께 이런 말을 듣고 나면, 그동안 내심 혼자 불안해했던 시어머님을 향한 마음에 꽃이 펴지죠.
하지만 이런 기쁜 말 한번 들었다고 긴장은 잃지 않고요. 그게 인간관계.

 

뭐 어느 정도는 잘 보이려고 하는 것도 있지만, 여자가 여자끼리 팔짱 끼는 것은 꽤 관계적으로있어 괜찮은 스킨십이라고 생각해서 어머님과 길을 걸을 때에는 종종 제가 먼저 어머님의 팔짱을 끼곤 해요. 어머님은 거의 반응이 없으시지만, 제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며느라기가 끼운 팔짱이 잘 고정될 수 있도록 조금 무리한 포즈라도 계~ 속 고정하고 계신 것을 알 수 있게 돼요 (웃음)
좀 아프실 것 같으면 제가 팔자를 빼고요, 가끔 웃으면서 안아드리기도 하고, 남편에게 빨리 재밌는 이야기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보라고 재촉하기도 하고요. 

언젠가 "새 딸이 생긴 것 같아서 기쁘다. "라는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는데, 적당히 귀찮아하지 않으실 만큼 즐거움도 드리고 싶고, 정말 막둥이 딸처럼, 신경 써드리고 싶은 게 제 마음이에요.

저희 어머니와도 꽤 오래 떨어져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 나를 나아주신 어머님께 제대로 매일매일 해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은연중에 툭툭 튀어나와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시어머님 께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오늘,

 

남편도 해외에서 근무하는 환경이 잦았었고, 어머님과 딱히 둘이 있을 때에 대화하는 모습도 보기 드물고, 예전 포스팅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워낙 말수가 적은 가족이어서 마루짱이 참 혼자서 발 동동 굴리던 시절이 있었어요. 성격 자체가 워낙 뭔가 나서서 해야 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눈치껏 그렇~게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화기애애한 상황을 만들어보려고 난리 부르스를 춰보기도 했죠.

시간이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저도 "꾸며내지 말자"라는 생각을 마음속 깊이 갖게 되었고, 상황을 바꾸려고만 하지 말고, 내가 그 상황과 분위기에 무르익어가면서도 충분히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라는 점을 깨닭게 되고 나서부터는 좀 더 어머님과의 관계도 자연스러워지지 않았나 싶어요.

이런 고요함도 좋고, 조용하고 다정한 분위기도 좋고. 그런 상황 속에서 이 또 하나의 가족들이 살아온 모습들과 내가 모르는 시간들을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처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랄까요. 남편의 본가에 가면 참 조용하고. 아늑합니다.

이제 남편도 잦은 해외출장이 없는 일들을 현재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이젠 일본에 완전히 돌아가 정착할 생활들을 원하고 계획 중이기 때문에 어머님께도 좀 더 능숙한 아들내미의 말솜씨를 구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어머님의 한국 첫 여행인 것을 하늘도 아셨는지 참 날씨도 끝없이 좋았고 , 저희 두 부부도 기쁘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어머님 얼굴도 내내 화색이 영력 하신 건 마찬가지셨고요. ♡ 평소에는 잘 보지 못했었던 광화문의 행사나 기타 이벤트, 시청에서의 군대 이벤트 (일본에서 나름 알려진 한국의 늠름한 군인 분들의 해군, 육군, 해병대 모두 총출동~),

 

그리고 그렇게도 자리가 없어서 못 앉았었던 삼청동 카페 "커피방앗간"에서의 테이블 착석까지, 운이 다 좋게 따라줘서 어머님께서도 기분 좋으셨고, 볼거리도 많으셨고. 저희 부부도 아무리 주말에 와도 잘 경험할 수 없었던 많은 볼거리를 만나게 된 것 같아서 특별한 기억이 되었어요.

 

 

"자리 내줘서 고맙다. 커피방앗간 (웃음)"

 

 

 

 

아버님께서 살아생전에 어머님을 모시고 자주 여행을 다니셨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마 일본 자국 내에서의 이곳저곳에 대한 여행이었던 것으로 들었어요. 때문에 해외여행은 이번 한국 여행이 처음이셨고, 마치 과거 제가 생에 첫 해외여행을 일본으로 갔던 것처럼 말이에요. 한국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강서구도, 강남구도, 강동구도 아닌, 가장 일 순위인 강북의 종로라고 생각했었어요. 한국의 미를 가장 건축물로써도, 음식적으로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해외 관광객에게 기본적으로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지역은 단연 종로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그것이 맞기 때문입니다.

 

어머님이 지내고 계신 곳은 정말 높은 빌딩은 존재하지 않는 이나 카이기 때문에, 시원시원하게 뻗은 빌딩, 한국도 이렇게 발전한 나라이고, 그리고 역사를 현대물과 함께 동시에 보존해가고 있는 나라이며, 많은 젊은 층들과 노년층 남녀노소 할 것 없이즐기고 소중하게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어머님이 일본 댁에서 보는 드라마는 하나같이 역사드라마였기 때문에... 2018년의 한국 서울의 거리를 잘 모르실 것 같았거든요. 

하루만의 여행으로 모든 것을 느끼셨을지는 모르겠고, 일부라도 마음에 와 닿으셨을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셔터를 누르시는 어머님을 뵈니 괜스레 뿌듯해졌습니다. 아쉽게 이번에는 한복을 입어보지 못하셨지만, 다음 한국행에서의 다양한 이벤트를
또 한 번 기획해봐야겠어요.

 

 

 

 

 

 

 

 

 

어머님과의 서울 나들이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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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Korean, and live in Japan

싸이월드 감성 꺼내기 (feat. 2009년 홍대놀이터옆 의원 카페 제너럴닥터)

2021. 1. 7.

✎ maruko

maruko¦Bento Decorator ✍🏻서울출신 일본거주, 프리랜서 디자이너

싸이월드 감성 꺼내기 (feat. 2009년 홍대놀이터옆 의원 카페 제너럴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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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가 나에게 노크했다. 우리시대의 싸이월드는 어떤 존재였는지 시간이 지나서도 톡톡히 보여주고 있는 , 그 언젠가는 어딘가에서 결국엔 꽁꽁숨겨뒀던 감성을 꺼내야만 하는 예정된 결과였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넓다란 사진 앨범에 비닐을 벗겨 사진을 붙여 보관했던 때와는 다르게말이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시간여행을 하고있다.

그 언젠가부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디지털 사진들과 현재의 내 인생의 주인공인 음악들을 묶어 작은 앨범 공간으로 꾸려가던 싸이월드 미니홈페이지처럼,

요즘 한명두명, 다시 싸이월드 미니홈페이지에 작게나마 생각과 고뇌를 기록하는 지인들이 많아지고있다.

타인으로부터의 반응은 느리거나 없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그것이 상관 없는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누군가의 "좋아요" 가 굳이 필요하지않은 나만의 추억의 공간을 그렇게나마 계속해서 꾸려가고 싶은 것이고, 누군가 그때 그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싸이월드가 나에게 노크했다. 아니 내가 싸이월드에 노크했다.

몇일전 10여년간 나를 조종해오고, 내가 조종해왔던 페이크스위츠 라는 업을 잠시만 쉬기로 결정한뒤, 곰곰히 생각해보니. 지난 10여년간 내 네이버 블로그는 FAKESWEETS 공예에 대한 이름, 로고, 이미지 등이 떠난날이 단 하루도 없었더라. 개인적인 감성들을 적어내고 싶어도, 블로그의 본질을 흐리는 느낌이 들어 삭제하거나 수정하여 기록하곤했다.

그래, 처음 이 블로그를 제작했던때가 딱 10여년전 2009년이었고, 페이크스위츠 작업만을 위한 블로그를 제작하기 위함이었고, 초반에는 개인적인 취향이나 감성을 담은 게시판도 여러개 만들어봤었지만, 한우물만 파야했던 시기었다. 그렇게 나는 10여년만에, 네이버 블로그의 페이크스위츠가 메인이었던 메뉴 설정을 변경하고 , 메인 이미지를 과감하게 지웠다. 그리고 어떤 프레임을 끼워넣을지 흥분되는 고민을 연이어 하고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지나고 , 5년이 지나고 8년이 지나고, 늘 작업하는 모습과 , 행사하는 모습을 보이던 블로그를 내 개인 이야기로 채워넣을 생각을 하니, 사탕을 막 뜯고 있는 일곱살 어린아이처럼 기쁘다. , 나는 어디서부터 불만이었던걸까.

 

 

싸이월드 감성 꺼내기 (feat. 2009년 홍대놀이터옆 의원 카페 제너럴닥터)

2009년의 나는 홍대에서 사업하는 분들 사이에서 꽤 마당발이었었고, 의류업에 종사하고있었으며, 쉬는날에는 내가 좋아하는 홍대를 새로산 캐논 450D 카메라를 가지고 누비기 바쁜, 예쁜 카페를 돌아다니며 소위말하는 "혼밥"을 일찍이 즐기던 20대 여자아이었다.

홍대에는 지금처럼 커피 체인점보다는 제너럴 닥터처럼 그 카페만이 가지고 있는 개성넘치는 인테리어와 시스템으로 인기를 찾이하는 감성적인 카페들이 한가득이었다. 점점 돈독 오른 건물주들 투정에 못이겨 가게를 빼거나 가게가 없어지거나, 기업브랜드 회사로 갈아치워지는 현상에

이토록 소중한 공간은 계속해서 죽어갔다.

 

싸이월드 감성 꺼내기 (feat. 2009년 홍대놀이터옆 의원 카페 제너럴닥터)

 

 

 

싸이월드에 올렸었던 추억의 사진들은 픽셀이 너무나도 작기때문에 네이버 블로그에 가져오기 여간 쉽지 않은 상태였다. 햇살 가득 하던 홍대 놀이터 옆 의원 카페 "제너럴 닥터" , 차후에는 연남동으로 위치를 옮기고 2019년 현재 그 자리에는 아마도 "서셰프키친" 이 들어와 있을 것이다. (1층은 스타벅스)

현재 소식을 보니 연남동으로 옮겨 "다가구연남" 을 운영하다가 <회생식당>이라는 펍&비스트로 로 이전한다는 소식이다.

싸이월드 감성 꺼내기 (feat. 2009년 홍대놀이터옆 의원 카페 제너럴닥터)

난 2009년 이 카페에 앉아있었을 당시, 지금보다도 훨씬 마음의 여유가 충분했고, 지금보다도 훨씬 도전정신이 가득했던, 아직 때묻지 않았었던 열정적인 아이었던것만은 활실하다. 생일 전날이라 들떠있었고, 홍대는 너무나도 더웠으며, 어수선한 홍대놀이터에는 핸드메이드 마켓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지난 10여년간 홍대는 너무나 많이 변해왔다. 2009년 당시 한창 홍대에서 생활했을때 역시 선배들이 말씀하셨다 "야, 10년 20년전에는 안이랬어" 라고, 나또한 변해온 홍대에서 생활을 해왔던것이고, 지금역시 홍대는 또 변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시간여행을 하게되겠지.

능숙하지 않은 사진 셔터속에 담겨져있는 그날 그계절, 그 때의 그 시간속의 내 감성들은 더이상 크게 늘리기 어려운 이 픽셀 사진 한장속에

어렴풋이 녹아들어있다.

갑자기 서글퍼졌다.

 

 

게시글 작성일 2019. 1. 4.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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